잡지에서 읽은 시

오형엽_모티프, 인유, 몽타주, 알레고리(발췌)/ 사육제의 나날 : 신동옥

검지 정숙자 2024. 8. 20. 02:02

 

    사육제의 나날

 

    신동옥

 

 

  당분간은 당신의 죄악을 노끈으로 동여매 집밖으로 내놓으십시오.

  쥐들이 돌아가는 길마다 슬픔이 창궐합니다.

 

  쓰러진 자들을 짓밟고 춤추며 교회당으로 몰려가는 무리를 보십시오.

  새벽입니다.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맞대고 육식에 힘쓰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빛이 스미겠지요.

  누구고 이 성스러운 병의 벽을 깨부술 수는 없습니다.

    -전문(첫 시집『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p-13/ 문학동네, 2021.) 


  
모티프, 인유, 몽타주, 알레고리/ 신동옥 시의 미학적 방법론上 (발췌)_오형엽/ 문학평론가

 시는 첫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의 서시로서 '죄/회개' 모티프를 중심으로 신동옥 시 세계의 기본적인 모티프와 상징체계 및 의미 구도를 내장하고 있다. '사육제'(謝肉祭, Carnival)는 로마 가톨릭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금식 기간을 앞두고 갖는 관능과 자유의 축제 행사를 말한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 축제에 젖어 있던 이방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할 목적으로 그들의 풍습을 허용하면서 비롯되었으며 순수한 기독교 행사는 아니다. 따라서 이 시는 『사육제의 나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세속적 욕망이 종교적 신성에 개입하여 타락한 양상을 낳는 인간 세계에 대해 냉소적 풍자의 관점을 개입한다. 본문 전체에서도 종교적 신성의 영역이 세속적 욕망의 영역과 충돌하면서 기형적으로 변질된 인간세계의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1연에서 "죄악"과 "창궐"하는 "슬픔"에 대해 말하고 "쓰러진 자들을 짓밟고 춤추며 교회당으로 몰려가는 '무리'를 제시함으로써 인간 세계에 만연한 약육강식의 "죄악"성과 그 결과인 "슬픔"을 노출시킨다. '사육제가 문자적으로는 '고기여 안녕'(came vare) 또는 '고기를 버림'(carnem) 이라는 뜻이므로, 2연에서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맞대고 육식에 힘쓰는"  '새벽"의 "시간"이라는 구절은 세속적 욕망에 대한 반어적이고 냉소적인 풍자에 해당한다. 3연에서 "마지막 날/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스미"는 "빛"은 재림하는 종교적 신성에 대한 상징이지만, "누구고" "깨부술 수 없"는 "성스러운 병의 벽'은 인간 세계의 세속적 욕망을 "병"으로 비유하면서 그것이 견고하게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 의미 맥락을 제시한다.

  이 시의 제목 및 전체에 작용하는 기법적 방법론에는 "교회당", "빛" 이미지로 대변되는 카톨릭이나 기독교라는 종교적 은유와 "죄악", "육식", "병" 이미지로 대변되는 세속적 은유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이 기법적 방법론의 내적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우선 성경적 전거 및 이교적 전거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인유의 방법론에서 출발하고, 종교적 은유와 세속적 은유가 상충하며 기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제3의 상징체계로 융합된다는 점에서 몽타주의 방법론을 거쳐서 그 귀결의 결과물로서 형상화된 작품 전체를 시적 화자가 인간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조망하는 시선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알레고리의 방법론으로 종합된다고 볼 수 있다. (p. 시 116/ 론 1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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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7월(415)호 <기획 연재 신작특집 / 2000년대 젊은 시인들> 에서

  * 신동옥/ 시인, 2001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고래가 되는 꿈』『밤이 계속될 거야』『달나라의 장난 리부트』등

  * 오형엽/ 문학평론가, 1994년 『현대시』신인추천작품상 & 1996년 《서울신문》신춘문예 평론부문 등단, 비평집『신체와 문체』『주름과 기억』『환상과 실재』『알레고리와 숭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