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군락(群落)/ 박해람

검지 정숙자 2024. 8. 14. 01:56

 

    군락群落

 

     박해람

 

 

  대부분 열매들은 동그랗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멀리 굴러가라는 뜻이다. 동그란 형태의 도움을 받든, 그도 아니면 운 좋아 살짝 경사진 내리막의 도움을 받는 최대한으로 슬하에서 벗어난 그 한계점에서 모여 사는 군락지들, 나무들, 식물들의 마을인 군락지를 만날 때마다 모두 타고난 형태와 행태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천형들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언젠가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문주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문주란은 썰물 때에만 그 열매를 떨군다고 한다. 섬을 떠나 더 넓고 먼 뭍으로 가라는 뜻이 담겨 있겠지만 군락의 가장 큰 요건 중 하나는 매개媒介와 날씨가 아닐까 한다. 인간과 달리 식물은 날씨가 모국이고 고향일 것 같다.

 

  모이고 흩어지는 일에는 다양한 이유와 절박함이 있겠지만 어떤 구호는 수만 명이 사용해도 닳지 않는다.

      -전문(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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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매거진 시마 SIMA』 2023-가울(17)호 <칼로 새긴 시>에서

   * 박해람/ 1998년 월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백 리를 기다리는 말』『여름밤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