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호
권승섭
약속을 지키러 간다 주말 오후 두 시 광장
만나면 약속은 쉽게 사라지고
멍하니 서 있으면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연인을 만난 연인이 빠져나가고
공원의 인원이 두 명 줄어들고
시계탑을 바라볼수록 초조해지는 얼굴도 있었다
멀리서 차 키를 쥔 손을 흔들며 그가 온다
많이 기다렸어?
얼마만큼 우두커니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시계탑을 다시 보아도 알 수가 없고
차 키를 쥔 그와 차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시침과 분침이 겹쳐지는 순간으로 나아가듯
차 앞에서 그가 조수석 문을 연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거야
사방과 팔방으로 늘어진 곳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백운호수 팻말을 지나 우리는 백운호수로 향한다
호수를 지나도 호수의 이름이 있고
뭐든지 다 지워내는 물가
햇살의 세기로도시간을 안다
호수를 떠나 우리는 호수가 아닌 곳으로 가고
이름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간다
물가의 인원이 영이 되고 밤이 오고
호수는 잠잠히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시계탑의 바늘이 가리키던 곳으로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 기다림이고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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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매거진 시마 SIMA』 2023-가을(17)호 <SIMA 초대시>에서
* 권승섭/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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