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거북의 살을 먹는 들개의 살을 먹는 호랑이의 살을 먹는······/ 이장욱

검지 정숙자 2024. 8. 11. 00:57

 

    거북의 살을 먹는 들개의 살을 먹는 호랑이의 살을 먹는······

 

     이장욱

 

 

  ······그런 환상 속에서

 

  나는 거북의 살을 먹는 들개였다가 들개의 살을 먹는 호랑이였다가······

 

  개미가 되었지.

  개미가 되니 좋았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결국

  호랑이를 잡아먹을 수 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당신의 살과 내 살 사이의 거리는

  당신의 죽음과 내 죽음 사이의 거리와 같아서

  우리는 거의

  한 몸이었다.

 

  나에게 추도사를 해주세요.

  들개가 거북의 추도사를 하듯이

  호랑이가 들개의 추도사를 하듯이

 

  우리는 사무실을 나와 다운타운을 걸어갔다.

  개미 군락처럼

  긴 생이 펼쳐져 있었다.

    -전문 (시집『음악집』 2024. 문학과지성사) 

   * <이달의 시 현장 점검> 中 (p. 198-199)

    -  좌담: 오은경 · 정재훈(사회) · 전호석 

 

   ---------------------------

  * 『현대시』 2024-6월(414)호 <이달의 시 현장 점검/ 좌담> 중에서 

  * 이장욱/ 시인,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오은경/ 시인, 2017년 『현대문학』로 등단  

  * 정재훈/ 문학평론가, 2018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전호석/ 시인, 2019년『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