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함명춘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을 짊어지고 가기에
저토록 느리게 기어오르는 걸까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으니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그건 고뇌일 거다
그래, 지상의 고뇌란 고뇌는 모두 끌어모아
등 위에 짊어지고
나무 꼭대기에 올려 놓으려는 거다
다시는 지상의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아예 큰 구름 위에
붙들어 매어 두기 위해 기어오르는 거다
-전문-
▶가볍고 가벼워서 세상의 그 누구도 읽을 수 있는(발췌)_김춘식/ 문학평론가
'나무늘보'의 형상에서 시인의 자기 초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개인적 견해는 아닐 것이다. '고뇌'를 끌어모아 지상의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 나무늘보의 느린 행보가 구도자의 그것처럼 보이는 것은 '고뇌'라는 무거움을 혼자 다 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 쓰기의 '비움'이란 이 점에서 '역설'이다. 스스로 무거워지고 힘겨움을 감수하지만 그 행위 이면에는 '가벼움'과 '해탈'에 대한 강한 '열망'이 존재한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 『종』에는 '삶'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통찰이 담겨 있다. 삶이 낡아가고 온통 닳아져서 완성되는 과정의 역설, 그런 인생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이번 시집 속에는 상당히 다양한 대상을 통해 그러나고 묘사된다.
이런 그의 자세나 시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완성하려는 '단호함'이나 결기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으로서의 완성과 생활을 멀리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그의 무의식적 표현일지도 모그지만, 그의 비움과 가벼움의 자세는 역설적으로 어떤 '단호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p. 시 122/ 론 122-123)
--------------------
* 『현대시』 2024-6월(414)호 <커버스토리> 에서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무명시인』『지하철엔 해녀가 산다』『종』
* 김춘식/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윤_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발췌)/ 초전의식*의 자서전 : 성기완 (0) | 2024.08.10 |
---|---|
무명시인/ 함명춘 (0) | 2024.08.10 |
달빛감옥/ 백연숙 (0) | 2024.08.09 |
이철주_신록의 밀어와 범람하는 폐허들(발췌)/ 남이 될 수 있는 우리▼ : 이담하 (0) | 2024.08.09 |
정과리_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1 (발췌)/ 다시 마카로니 웨스턴 : 전봉건 (0) | 202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