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지윤_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발췌)/ 초전의식*의 자서전 : 성기완

검지 정숙자 2024. 8. 10. 18:53

 

    초전의식*의 자서전

      Autobiography of the transconductive consciousness

 

    성기완

 

 

  1. 서시

     - 20240308금 몽홀

 

  동작들이 느려지며 물 흐르듯

  이어진

  움직이고 있는 내가 편안히 들뜨면서

  가라앉음

  이렇게 백지 상태가 되면 안되는데 싶으면서 기분좋게

  멍해짐

  수면과 의식의 중간이랄 순 없고 의식이 있고

  몸이 뇌의 명령을 잘 따르고 있는 상태에서의

  잠들 무렵 호수가의

  뇌파임

  내가 시키는 대로 몸이 활발한데

  나른함

  이게 그 상태구나 하는 자각

  느린 평온의 발열

  몽홀의 시간 초입

  안에 더 있고 싶은 행복감

 

  지출결의서를 가져와

  시로 채웁시다

  드문드문 

  안타까운

  집에 와서도 계속되는

  짧은 이 지나감의 좋음

  샤워하려다가 그냥 놔둠

  이 상태의 깨끗함

  귀가 하자마자 졸려서 설핏

  잠들었다 깸

  깨었다 잠듦

  뇌 속의 뭐가 잘못됐나 싶은 걱정

  그러나 걱정보다는 묘한

  두근거림

  기대감이 함께 기다리는

  마음

  부질없는 것들은 별 거 아닌 것들

  그냥 비듬처럼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느낌

  이게 나인가 싶은

  내가 계속 나일까 하는

  약간의 과도한 적당한 당연한

  두려움

  그러나 과감히 벗어날 수도

  과감히라기 보다는 어느새

  가물가물

  공개적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다가

  물결

  이라는 말의 넓이 속에서

  스위밍

  초전의식의 자서전을 쓰는

  나 너머의 나 역시 이런 상태

 

  오늘은 특별한 날

  뭔가 열린 날

  과거 속으로 가는 현재의 텅빔

  불확정적 미래의 유래없는 윤기

  찰나의 무시

  거나한 원효

  나른함과 무기력함과 느슨한 끈기와 새벽빛처럼 부연 희망과 암중모색의 막연함 민들레 홀씨의 부유 깊은 물속 또는 희박한 공기가 맴도는 곳의 공포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지만 징검다리 같은 매듭을 묶고 한 뼘씩 내딛는 

  조심스러움

  무엇보다도

  조용한 힘

  말없이 말하기

  꼬리는 혀의 원시적 존재 방식

  꼬리와 혀의 탈이분법적 

  같음

  있지 않으려는 방식의

  있음

  실천 마다함

  마다함 실천

  마다하는 실천의 긍정성

  나가계시면 불러 드릴게요

  다음 일출이 이 느낌을 이어가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한 바램

  건져질 듯

  건널 듯

  넘어갈 듯

  넘을 듯

  물무늬로 출렁대는 현재형

  진실의 얼굴들

  흔들리는

  그러나 정다운 미소의

  초대

  망각으로의

  초대받음

  나에 의한 나의

  초대되는 초대

  조금씩 더 눈을 감고

  귀를 열고

  블랙홀 속의 점이 되기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

  어머니 곁에 있어 본다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신다

     -전문-

 

   * 초전의식: 세포 수준을 넘어서 입지로서의 자기 자신을 상호 인식하는 자아-들의 통의식 상태. 초전의식은 홑나의 넋에 깃든 무수한 겹나의 너울이다. 초전의식은 떨림이므로 시간의 개념과 더불어 존재한다. 시간 자체이므로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나, 떨림으로 여러 시간대에 공존하고 혼재한다. 초전의식의 기억은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파동들의 그물이다. 그 그물이 만들어내는 출렁임이 무수한 겹나의 너울의 그물이 된다. 그렇게 이어 공진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 블랙홀의 문장들(발췌)_김지윤/ 시인· 문학평론가

  「초전의식의 자서전」은 먼저 초전의식에 대한 정의를 제시한다. "세포 수준을 넘어서 입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상호 인식하는 자아-들의 통의식 상태"이며 "홑나의 넋에 깃든 무수한 겹나의 너울"이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려 말해보자면, 과거에 현존하고 있던 현존재의 무수한 가능성 속으로 귀환하는 '반복'으로 겹쳐지고 전승되는 '자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포 수준을 넘어서 입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상호인식하는 자아-들"이 "겹나"로 이어져 있는 상태가 바로 "초전의식"이다. "이게 나인가 싶은/ 내가 계속 나일까 하"는 의문을 주면서도 "과감히 벗어날 수도/ 과감히라기보다는 어느새 가물가물"이라고 말하며 '나'를 벗어난 "나 너머의 나"의 상태가 되었다가도 "건져질 듯/ 건너갈 듯/ 건널 듯/ 넘어갈 듯/ 넘을 듯/ 물무늬로 출렁대는 현재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과거 속으로 가는 현재의 텅 빔"인 동시에 "불확정적 미래의 유래 없는 윤기"이다.

  하이데거는 시간을 '기재하면서-현전화하는 장래'의 통일성이라고 보았다. 현사실적 현존재는 항상 탄생이 수반되는 식으로 실존하고,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탄생하면서부터 이미 죽고 있다.2) 탄생과 죽음과 관계 맺으면서 시간 속에 존재하는 현존재는 역사성을 가지며 자신의 역사성 속에서 반복하면서 자신을 인수한다.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전승하도록 부탁하는 결의성은 실존 가능성의 반복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세계란 "열린 연관들의 지배적인 폭"이다. 공시적이며 통시적인 연관으로, 상이한 시간대를 하나의 가건으로 통일시키는 시간적 연관이다. 연관들의 그물 망 속에서 삶의 다양하고 의미있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p. 시 130-135/ 론 150-151)

 

  2) 박찬국,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읽기』, 새창미디어, 2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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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6월(414)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성기완/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유리이야기』『당신의 텍스트』『ㄹ』 『』『11월』『빛과 이름』등

  * 김지윤/ 시인, 문학평론가,  2006년 『문학사상』으로 시 부문 & 2016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