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눌변/ 이서화

검지 정숙자 2024. 1. 23. 01:24

 

    눌변

 

    이서화

 

 

  오래 쓰지 않았는데

  말투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꼭 맞은 대답들은 어디에 있나

  늦가을 묻는 날씨와

  재치 있는 나뭇잎들의 대답

  마중 나가거나 지나친 일들을 불러들여

  설명할 테이블이나 의자를

  마련해야지 하면서

  여전히 엉거주춤 서 있다

 

  호박잎은 여름내 질문만 퍼붓다

  군데군데 크고 잘 익은 대답을 들킨다

  질문엔 다 때가 있고 그때를

  지난 곳곳엔 호박 같은

  대답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눌변은 늘 애호박을 놓치고 만다

  그런 눌변은 앞보다는 옆을 선호한다

  옆을 묻고 옆을 대답한다

  

  식물들은 눌변이 없다

  대답 없인 처음부터 대답 없는 질문은

  피워내지 않는다

  말이 다르고 대답 종류가 다른 건

  동물들뿐이다

     -전문(p. 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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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이서화/ 강원 영월 출생,  2008년『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낮달이 허락도 없이』『날씨 하나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