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최금녀

검지 정숙자 2024. 1. 30. 01:3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정동 16번지

 

     최금녀

 

 

  부서진 건물 뼈대와 뼈대 사이

  들어찬

  무허가 판잣집, 수백 채

  주인 없는 땅, 정동 16번지

 

  이런 횡재 없다고

  이런 낙원 없다고

  평안도는 평안도 사투리로

  함경도는 함경도 사투리로

  천막 치고 깃발 꽂고 문패 달고

 

  우물 파 물 먹고, 색종이에 껌 싸 돈 벌고, 양초 만들어 불 켜고,

  멀리서 온 구제품 나누고

 

  쌀 한 되씩 연탄 한 개씩 사고

  떡 팔고 국수 팔고 일수 찍고 피 팔고 지게 졌던

  구 러시아 영사관

  하루건너 경찰 오고

  하루 건너 불자동차 출동

 

  서울 한복판이라고

  치안이 불안하다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지 않는다고

 

  쫓겨나지 않았다

  쫓아내지 못했다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기여고 덕수궁 둘러친

  명당 중의 명당

  러시아가 주인이었던, 정동 16번지

 

  가 호적을 만들 때

  고향이라 적었다.

     -전문(p.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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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최금녀/ 1962년『자유문학』으로 소설 부문 등단, 시집『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외 7권, 시선집『최금녀의 시와 시세계』, 활판 시선집『한 줄, 혹은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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