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에게
homo oilicus
김추인
진실로 그대의 잘못은 아닌데
우리, 죽음의 경계에 다가서고 있네
죽음이란 블랙홀로 달리고있네
손발 맞지 않은 세기의 정책이
무기력한 지성이 결단이
우리네 흐릿한 의식이
나의 삭고 낡은 나이가 어둠의 문 앞에 서 있네
가볍고 예쁜
질기고 값싼
그대가 우리 행성을 알록달록 덮어가네
플라스틱, 그대의 본명은 '아세틸렌'
나 쓰는 가방도 가전류도 옷가지도
다 석유, 석탄의 연금술이라고
그러니까 탄소가 행성의 대기를 무겁게 끌고 가겠는데
여린 목숨들 사라지고 있겠는데
마약 같은 그대를 끊자하고
집안의 플라스틱이란 플라스틱은 다 내다 버렸는데
사흘 안 가
집안 곳곳 다시 들어앉는 그대여
나 그대를 끊어내지 못하네
차차 방도가 나올 거야
잠시만 더 사랑하자
우리는 계속 미루고 있네
이제는 뚝! 참으로 끊는다 해도 늦은 이때
-전문(p. 92-93)
* homo oilicus : 석유문명에 의존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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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행성의 아이들』『해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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