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강릉 밤바다/ 신은숙

검지 정숙자 2024. 1. 23. 01:04

 

    강릉 밤바다

 

     신은숙

 

 

  울까 말까 할 때는 우는 게 낫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게 낫다

 

  바람이 등을 떠미는 밤 동쪽으로 흘러와

  해변의 그네에 앉으면

  살아있음은 흔들리는 것이라는 걸

  부서져 포말로 흩어질지라도

 

  길게 누운 해안선

  빛이 있는 곳으로 파도가 온다

  칠흑 바다를 달리는 캉캉 주름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다

  어둠을 삼킬수록 환한 침묵의 달

 

  파도 손잡고 해변을 걸으면

  그림자 하나 묵묵히 따라오는데

  마침내 달도 보이지 않고

  화엄경 같은 밤바다만 출렁거린다

      -전문(p.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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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신은숙/ 1970년 강원 양양 출생,  2013⟪세계일보⟫ 시 부문 등단, 시집『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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