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밤바다
신은숙
울까 말까 할 때는 우는 게 낫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게 낫다
바람이 등을 떠미는 밤 동쪽으로 흘러와
해변의 그네에 앉으면
살아있음은 흔들리는 것이라는 걸
부서져 포말로 흩어질지라도
길게 누운 해안선
빛이 있는 곳으로 파도가 온다
칠흑 바다를 달리는 캉캉 주름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다
어둠을 삼킬수록 환한 침묵의 달
파도 손잡고 해변을 걸으면
그림자 하나 묵묵히 따라오는데
마침내 달도 보이지 않고
화엄경 같은 밤바다만 출렁거린다
-전문(p. 119-120)
--------------
* 여여시 3집 『꽃이라는 이름을 벗고』에서/ 2023. 11. 11. <채문사> 펴냄
* 신은숙/ 1970년 강원 양양 출생, 2013년 ⟪세계일보⟫ 시 부문 등단, 시집『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딧빛 오디새/ 정영숙 (0) | 2024.01.29 |
---|---|
눌변/ 이서화 (0) | 2024.01.23 |
노랑매미 꽃여자 외 산문 1편/ 박미산 (0) | 2024.01.22 |
플라스틱에게/ 김추인 (0) | 2024.01.22 |
우주적 경계/ 김지헌 (0) | 2024.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