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오딧빛 오디새/ 정영숙

검지 정숙자 2024. 1. 29. 02:47

 

    오딧빛 오디새

 

     정영숙

 

 

  내가 알던 사람은 뻐꾸기 우는 숲속에서

  풋잠에 들었을 텐데

  누가 먼 하늘가 낮달 따라 여기까지 왔나

 

  뻐꾹 뻐꾹 초르르 칙 초르르 칙

  뻐꾸기와 물총새가 울던 산골마을

  삼십 촉 전등 아래서 백석의 시를 읽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지

  높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눈앞에 나타날 것 같아

  솔바람 풀벌레소리 흰 고무신에 저녁이슬 내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숨이 막혔지

 

  해름하늘에 오딧물 밴 손톱을 담그면 낮달이 창백한데

 

  하느님이 별의 운행을 수십 년 전 뒤로 돌려

  지금 이 자리에 멈추게 했나

  손목 언저리를 스치던 서늘한 공기의 감촉

  어둠을 뚫고 반딧불이처럼 빛나던 오딧빛 눈동자

  저무는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저 오딧빛 오디새

  「왕십리彺十里」 시비에 못 박힌 채

  그때의 아름답던 날들을 기억하는지 마냥 울고 있다

 

  새소리만 높고 외롭고 쓸쓸하다

       -전문(18-19)

  

   *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변형해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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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정영숙/ 1993년 시집으로 등단, 시집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갔을까』『볼레로, 장미빛 문장』『황금 서랍 읽는 법』『옹딘느의 집』 등 8권, 활판시선집『아무르, 완전한 사랑』, 명화 산문집『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