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빛 오디새
정영숙
내가 알던 사람은 뻐꾸기 우는 숲속에서
풋잠에 들었을 텐데
누가 먼 하늘가 낮달 따라 여기까지 왔나
뻐꾹 뻐꾹 초르르 칙 초르르 칙
뻐꾸기와 물총새가 울던 산골마을
삼십 촉 전등 아래서 백석의 시를 읽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지
높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눈앞에 나타날 것 같아
솔바람 풀벌레소리 흰 고무신에 저녁이슬 내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숨이 막혔지
해름하늘에 오딧물 밴 손톱을 담그면 낮달이 창백한데
하느님이 별의 운행을 수십 년 전 뒤로 돌려
지금 이 자리에 멈추게 했나
손목 언저리를 스치던 서늘한 공기의 감촉
어둠을 뚫고 반딧불이처럼 빛나던 오딧빛 눈동자
저무는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저 오딧빛 오디새
「왕십리彺十里」 시비에 못 박힌 채
그때의 아름답던 날들을 기억하는지 마냥 울고 있다
새소리만 높고 외롭고 쓸쓸하다
-전문(18-19)
*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변형해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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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정영숙/ 1993년 시집으로 등단, 시집 『나의 키스를 누가 훔쳐갔을까』『볼레로, 장미빛 문장』『황금 서랍 읽는 법』『옹딘느의 집』 등 8권, 활판시선집『아무르, 완전한 사랑』, 명화 산문집『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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