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라이카는 즈베츠도츠카를 모른다/ 박수일

검지 정숙자 2024. 1. 6. 14:03

 

    라이카는 즈베츠도츠카를 모른다

 

     박수일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개는 드물다 과분하게도 우주까지 날아갔으니

 

  위대한 이름이 되어보자

 

  원래 쿠드랴푸카라 불렸다 모든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니 아무렇게나 불려도 좋을 것 모스크바의 추운 뒷골목을 질주하던 체력으로 고된 훈련을 견딜 것 우주에 갔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을 것 발사 후 선체 내 고온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을 것 대기권 재진입 시 독이 든 먹이를 먹고 안락사했다고 발표할 것 고온과 스트레스로 죽었든 독살당했든 어차피 죽을 운명일 것 영웅으로 기리고 추모해도 개는 역시 개일 것 그래도 너희들 같은 개새끼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

 

  즈베츠도츠카는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무사히 귀환했다 그러나 해피엔딩일 것 다음부터 너희들이 먼 외계로 날아갈 것

    -전문(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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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 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박수일/ 2020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