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
이원복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은 마음이 가난해진다
두 마음이 한마음이 될지라도 아무도 그들의 가난을 비웃지 않는다
한 사람을 위해 버려진 많은 시간들이, 공간들이
연인들의 뒷모습에 숨어 다만 흐느낄 뿐이다
홀로 남겨진 자의 뒷모습은 빈 액자에도 차마 넣어두지 못한다
눈을 뜨면 후끈거리던 가슴 쪽으로 찬 서리가 하얗게 내려
남겨 둔 서로의 그리움조차 차갑게 거두어 간다
사랑하다 홀로 남은 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음을 생각하고
지난날을 생각하고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
그 생각의 순환에 길들여진 심장이 마르지 않는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순환시키며 그의 가슴에 남은 찬 서리를 녹여 버린다
그러다 한때 둘이서 팔짱 끼며 견디던 혹한의 바람이 불면
그는 잦은 기침을 하고 한 번의 기침을 할 때마다 패이던 땅 위의 웅덩이를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뛰어 넘어 다닌다
비가 내려 가끔 웅덩이마다 고인 흙탕물 위를 소금쟁이들 발 디뎌
반짝반짝 추억을 들쑤시며 건너갈 때
그는 비로소 가슴속에 패여 있는 수많은 웅덩이를 발견하게 된다
가슴속 웅덩이를 건너려면 그 반경만큼의 그리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려야 한다
그는 한 마리의 소금쟁이가 되어 그리움을 건너간다
-전문(p.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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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시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이원복/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 『리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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