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떠도는 빗방울을 찾으러 갑니다/ 신새벽

검지 정숙자 2023. 12. 8. 02:23

 

    떠도는 빗방울을 찾으러 갑니다

 

    신새벽

 

 

  비릿한 파도가 지나간 갯벌

 

  내 손바닥엔 검은 구름이 꼬깃꼬깃하고

  얼굴엔 비의 허물들이 붙어

  시야가 엉킨 빗속을 난 혼자가 되어 걷는다

 

  낡은 기둥처럼 서 있던 당신의 표정이 떠오르고

  눈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미로에 갇힌 듯 몽롱한 뒷모습이 아른거릴 뿐

 

  붉은 칸나의 얼굴로 풀어진 감정을 빗속에 푹 담그고

  선을 넘을 듯 말 듯

  캄캄한 목소리로 물컹거리는 한숨을 나에게 불어넣는다

  검은 우울이 매일 당신을 얼룩지게 만든다고

  혀 밑으로 지나는 금이 간 문장들을 뱉어놓고는

  기척도 없이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젯밤 찢어진 번개를 내려놓고 가버린 바닷가

  허공에 한껏 부풀려진 당신의 독백도 사라진 지금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웅크리고 토악질하며

  선미船尾에 널브러져 있던 아주 오래전의 당신이

  물보라에 부서지고

 

  체온이 다른 바다와 발가락 사이로 스미는 갯벌은 절름발이 문장을 만들고 있다

      -전문(p. 92-93)

 

  -------------------------

  * 시동인 미루』(1호_근작시)에서/ 2023. 11. 11. <상상인> 펴냄

  * 신새벽/ 201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파랑 아카이브』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눈물겹기도 하지/ 김밝은  (0) 2023.12.13
아이스아메리카로 주세요/ 김선아  (0) 2023.12.13
느닷없이/ 유현숙  (1) 2023.12.08
니스*/ 하두자  (0) 2023.12.08
강제 이혼 외 2편/ 김우식  (0) 202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