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유현숙
디지털 메트로시티의 작은 카페 창가에 앉으면
낭만적인 밤이 된다
달빛에 더 아름다운 당신이 된다
카페를 나서 달무리를 이고 걷다 보면
상하좌우 나를 끌고 다니는 저 무엇
어느 저녁에 본 명동성당 뒷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또 하나의 만다라여서
밤늦도록 성당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던 적 있다
그대라는 별
그 행성에 닿기 위해 묵주를 굴리던 밤이었다
다시 홍제천 돌다리 위에 서면
물빛은
도심 차량들의 밤 질주에도 굳건히 제 빛을 지킨다
힘이 들어가면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 문장을 깨닫지 못해
아팠다
매시간 지나는 밤 기적 소리는 둥글 자라는 달을 누르고
배고픈 수형자는 최초의 발자국을 들고
갈 곳 없어 머뭇거린다
-전문(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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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동인 『미루』(1호_신작시)에서/ 2023. 11. 11. <상상인> 펴냄
* 유현숙/ 2001년 ⟪동양일보⟫ & 2003년 『문학 선』으로 등단, 시집『몹시』『외치의 혀』『서해와 동침하다』, e-book『우짜꼬』, 수필집『세상의 존귀하신 분들께』(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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