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학술서_ 『정당화의 철학』 / 발췌 부분들 ①
- 니체 『비극의 탄생』
* 인생의 정당화가 정당화 철학의 핵심 내용이다. (p. 8)
* 인생의 정당화가 정당화 철학의 핵심 내용이다. 니체의, 미적 자유로서의 정당화 예술은 '올림포스 신神들로 하여금 인간의 삶을 살게 하면서 인간의 삶을 정당화한다'는 격률에서 확인되듯, 정당화 예술에서 정당화의 철학으로 전진한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올림포스 신들이, 그리스 '전성기 비극'의 올림포스 신들이, 비극의 '아폴론 무대[ 비극적 신화]'의 주인공들이, 인간의 삶을 살면서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오이디푸스의 고난이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아트레우스[아가멤논 오레스테스] 가문의 저주'가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아드메토스의 여정이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신들의 삶이 인간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은 진리가 인간을 정당화시킨다는 것과 같다. '신은 믿을 만하다.' 신은 진리와 유비로서 반박 불가능성이 특징이다. 진리도 반박 불가능성이 특징이다. 신들의 고난이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말할 때 중요한 전체가 '반박 불가능성으로서의 신神'이다. (p. 8)
* 인생은 오로지 미적 현상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미적 현상은 아폴론적 미적 현상이고, 디오니소스적 미적 현상이다. (p. 26)
* [영원회귀 사상이 초인간 사상을 가장 많이 포함한다. '인생이여, 다시 한번!'이라고 외치게 하는 것이 영원회귀-론論의 핵심이다. '동일한 것의 영원히 반복ewige Widerkehr des gleichen'이 이루어져도 똑같이 살아주겠다, 봄-여름-가을-겨울 똑같이 살아주겠다, 생-로-병-사(를) 똑같이 그 순서로 살아주겠다, 이렇게 말할 때 이것은 영원회귀에 관해서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할 수 있는 ~imstande sein' 자로서 '강한 자'이다. 초인간 사상을 지닌 초인간으로서 강한 자이다]
초인간 사상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발판과 다른, 이데아 영혼론 내세관 무산자無産者 등의 발판이 없는 , 자기 고유의 형이상학적 능력을 요구한다. 기독교, 혹은 루터주의에서 말하는 '구원'과 비동질적 유비인 것은 고유의 형이상학적 결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주의 또한 오로지 자기 결단에 의한 것으로서 '믿음'에 의한 구원을 말하기 때문이다. (p. 48-49)
* 니체 철학의 본류로서 대지에 대한 전면적 긍정, 현상에 대한 전면적 긍정, 현상이 본질이라는 인식, 배후세계Hinterwelt에 대한 전면적 부인, 요컨대 '현상이 본질'이고, '현상 뒤의 배후세계란 존재하지 않음'이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 점이다. 요컨대 이후의 '유고'에서 '전도된 플라톤주의자'로서 니체가 스스로를 지시했을 때, 그것의 구체화가 『비극의 탄생』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전도된 플라톤주의자 이전에 전도된 칸트주의자를 먼저 말할 수 있다. '칸트'를 새롭게 해석한 니체를 말할 수 있다. 물자체(Ding an sich, "사물의 가장 내적이고 진정한 본질")를 대신하는 "단순한 현상들"을 말하고, 단순한 현상들을 "최고의 유일한 실재"로 승격시킨 것은, 분명 칸트에 대한 진전된 해석이고 새로운 해석이다. '우리 인식은 현상만 알 수 있을 뿐이지,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소위 '칸트 위기'를 '현상이 물자체이다'라고 '받아넘겼을 때' 이것은 칸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상이다. 전도된 칸트주의를 말할 수 있다. '물자체는 없다. 현상이 물자체이다'가 전도된 칸트주의이다. (p. 76)
* 예술은 "자연 현실의 모방"일 뿐 아니라, (냉혹한 냉엄한) 자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 곁에 세운 "자연 현실의 형이상학적 보충물이다" [예술은 '자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보충물ein metaphysisches Supplement'이다] 여기서 (니체의) 주목되는 입장이 나타난다. 니체 예술론이다. 니체에게 '1차적' "형이상학적 미화의 의도"는, "예술"을 대하는 기본 입장으로서 수용적 대상이다. 미화, 곧 변용에 의한 것으로서 인생을 그대로 살 만한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 1차적 형이상학적 미화이다.
문제는 실재성이고, 그리고 '실재성의 외면'이다. 니체는 '1차적 아폴론'에 머무르는 것에, 즉 '실재성'의 미화(변용)에 계속 머무르는 것에 분명히 반대한다. 2차적 형이상학을 요구한다. '실재성'의 미화는, 실재성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것으로서 실재성의 은폐이다. 잔혹성과 잔인성이 그 표상인 실재성의 '은폐'는 실재성의 외면 및 호도糊塗와 다름 없다. [1차적 아폴론적 변용으로 끝내는 것은 냉혹성 잔혹성이 표상인 '삶의 실재'를 외면하고 호도하는 미적 행위이다] (p. 157)
* 미학은 늘 철학적 미학이다. (p. 161)
* 어쨌거나 『비극의 탄생』에서 아포리아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상호 관계이다. 아폴론 자체가 난경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자체가 난경이 아니라,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상호 관계가 난경이다. 니체도 위의 인용문에서 고백(?)했다: "비극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힘든 관계"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더라도 21장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강조하자. 니체의 '비극'과 '예술'에 대한 '결론 같은 결론'이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의 언어로 말하고, 그러나 마침내 아폴론이 디오니소스의 언어로 말한다. 이로써 비극과 예술 전반의 최고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비극과 예술'의 최고 목표가 디오니소스의 언어와 아폴론의 언어, 이 두 가지 언어의 상호 작용이다. 적어도 두 가지 언어('내용으로서 파괴적 언어'와 '형식으로서 호메로스 언어')의 병렬이다. (p. 185)
* 니체는 형이상학의 빗금을 넘어선 적이 없다. 형이상학을 부인否認할 때도 그는 형이상학적이다. 니체 고유의 형이상학에 의한, (일체의)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부인否認이다. [신에 대한 사망선고→'인간의 영원한 죽음' 수순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 그의 차라투스트라 형이상학이다. 초인간 사상과 영원회귀 사상이 '신에 대한 사망선고=인간의 영원한 죽음'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서, 자발적 몰락 의지가 많이 포함된 초인간 사상이고 영원회귀 사상이다. 기존의 플라톤이나 기독교에서의 형이상학적 확고한 발판이 없는 '니체 고유의 형이상학'이다] (p. 230)
* '멈추어라 너무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말하고 파우스트는 죽겠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약속한 적 있다. 아름다움은 '세계의 비림'과 같은 것으로서 파우스트 인간을 죽고 싶게 만든다. 파우스트가 물은 것이 '이 세계의 가장 안쪽을 붙잡은 것이 무엇인가?'였고, 답이 '그 아름다움'이었다. 디오니소스 비극예술이 형이상학적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현존이 미적 형상으로만 시인是認된다] [시 음악이 '비극의 신화 비극적 세계상'에 대한 광포한/잔잔한 반주이다] 니체[괴테]가 문학 신화, 즉 신화학Mythologie에 미학과 형이상학의 위엄을 부여했을 때, 이것은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혹은 니체]에게도 해당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이후, 신화학은 자연신학 [철학 신학], 즉 존재 신 론Onto Theo Logie에 합류한다. (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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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일_학술서 『정당화의 철학』/ 2022. 2. 28. <푸른사상사> 펴냄
* 박찬일朴贊一/ 1956년 강원 횡성 출생, 학술서『독일 대도시시(詩) 연구』『브레히트 시의 이해』『멜랑콜리커들』『시대정신과 인문비평』등, 평론집『해석은 발명이다』『사랑, 혹은 에로티시즘』등, 번역서『삶의 한가운데』『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등, 시집『나비를 보는 고통』『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모자나무』『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인류』『북극점 수정본』『중앙 SUNDAY-서울』『아버지 형이상학』등, 연세대 독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독일 카셀대학 박사후과정 마침. 현)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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