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엄마(부분)
양수덕/ 시인
할머니와 아이는 추운 산골에서 눈사람과 한 가족처럼 지냈다. 아이는 눈만 뜨면 눈사람 엄마 옆에 가서 놀았다. 눈사람 엄마에게 말을 붙이고 아이가 대답을 하는 걸 바라보는 할머니는 마음이 쓰렸지만 해줄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비라도 좀 연락을 하고 살면 좋을 텐데, 돌 벌러 서울로 간다더니 아무 소식도 없고······ 아이고 불쌍한 것, 저 어린 것이 무슨 죄야.'
할머니는 툭하면 속상해서 중얼거리곤 하다가 마지막으로는 크게 한숨을 토해 냈다.
'아이고, 명도 짧기도 하지. 시퍼렇게 젊은 것이 저렇게 어린애를 두고 어떻게 가냐고.'
그러면서 연이어 팔자타령을 했다.
'이놈의 사나운 팔자······'
어느 추운 날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눈사람 엄마와 놀고 있던 아이는 할머니에게 말을 했다.
"할머니, 엄마는 어디로 갔어요?"
할머니는 손녀딸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아이가 조금씩 자라니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그건······ 엄마는 땅에서는 못 살아. 저기, 하늘에서 산단다."
아이는 목을 젖혀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하늘이요? 멀어요?"
"그럼. 아주아주 먼 곳이지. 아무도 살아서는 그 나라에 간 사람이 없어."
아이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말을 했다.
"그럼 눈이 하늘에서 오니까, 눈 나라에 엄마가 살고 있겠네요?"
"응. 말하자면 그렇지."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사람 엄마에게 한참 동안 눈길을 주었다.
"여기 소포 왔어요."
할머니와 아이는 점심을 먹고 있다가 그 말에 할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우편배달부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아이고 무슨 소폰가?"
"네. 할머니. 이거 받으세요."
할머니가 보니 아들이 보내온 것이었고 제법 부피가 컸다.
"마루에 좀 앉아요."
"네."
할머니는 처음 받는 소포에 얼떨떨해졌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꽤 크네."
우편배달부는 할머니의 주름진 미간을 보며 말했다.
"잠깐 거기 좀 앉아 있어 봐요."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더니 유리잔에 식혜를 담아내 왔다.
"이거 내가 만든 식혜예요. 목마를 텐데 쭉 넘겨 봐요."
우편배달부는 반가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렇잖아도 목이 말랐는데 고맙습니다.
우편배달부가 식혜을 마시고는 말했다.
"잘 마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살펴 가셔."
할머니는 소포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고 아이는 그것을 보고는 몹시 궁금해졌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응 아빠가 보내온 거야."
그 말에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할머니가 소포를 급히 풀자 편지 한 장과 두 벌의 방한복이 보였다. 할머니는 곧 편지를 집어 들었다.
"이거 아빠가 쓴 편지다."
아이는 눈을반짝거렸고 할머니는 돋보기를 꺼내더니 읽기 시작했다.
어머님께
그간 안녕하셨어요?
제가 소식을 안 드려서 많이 궁금해하시고 염려하셨을 거예요.
자리를 잡으면 연락을 하려다 보니 이제야 펜을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도 건강하시고 달래도 잘 있겠지요?
저는 다행히 일을 갖게 되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좀 바쁘긴 하지만 제때 월급이 나오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이 좋긴 좋아요. 몇 년 후 여기서 우리 가족 모두 살았으면 좋겠어요. 돈이 좀 들기는 하지만 제가 이직 젊으니까 시작해야지요. 애가 학교도 다녀야 하니 산골보다는 이런 데가 훨씬 나을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아요. 좋은 사장님을 만나 기술도 배우고 저를 인정해 주셔서 앞으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여기 동봉한 것은 어머님과 달래의 옷이니 추운 겨우내 따뜻하게 입으세요.
내년 이맘때쯤 집에 가보려 합니다.
어머님이 애를 잘 키워주시니 제가 마음이 든든합니다.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못난 아들 드림
편지를 읽고 난 할머니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소식 없는 아들이 걱정이 되고 원망스러웠는데 이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더니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빠가 너를 위해서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네. 일이 잘 되면 집에 오려고 했나 보다. 내년에 이맘때쯤 너를 보러 온단다." (p. 83~88)
아이는 눈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눈을 까뒤집어 보았고 맥을 만져 보았다. 다행히 살아있어서 모두가 감사의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아이 할머니는 울먹울먹하면서 손녀딸을 흔들었다.
"달래야 달래야. 할머니 왔다. 눈 좀 떠 봐. 응? 제발 "
이웃 한 사람이 제 옷을 벗어 아이의 등 밑으로 밀어 넣어 주었고 다른 사람 하나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게 비비고 만져 주었다.
얼마 후 아이는 마침내 눈을 떴다. 이웃들은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손녀딸을 일으켜 안았다. 손녀딸 등의 눈을 털어 주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잘 봐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할머니가 손녀딸을 쓰다듬으며 살펴보니 다행히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한 것 같았다.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네가 왜 여기까지 온 게냐? 뭐 하러 혼자서 돌아다녔어?"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을 했다.
"엄마를 만나려고요. 엄마가 하늘에 산다고 했잖아요. 하늘에 가려면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하니까요."
할머니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 그런데 엄마를 만났어요. 우리 집에 있는 눈사람 엄마가 나한테 왔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거래요. 눈사람을 만들 때 엄마가 굴려 주었대요. 내가 힘이 들까 봐 엄마가 온몸으로 눈살을 붙여 주었대요. 그리고 엄마 옷을 입혀 주어 따뜻하고 너무 좋았다고 했어요. 내가 클 때까지 겨울이면 눈사람 엄마가 올 테니 엄마가 사는 하늘에 다시는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다음에 아주 커서 할머니가 되면 오래요. 엄마가 허락하면 그때 오라고요. 저는 엄마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어요." (92~93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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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숲으로의 초대』에서/ 2022. 11. 30. <천년의 시작> 펴냄
* 양수덕/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신발 신은 물고기』『가벼운 집』『유리 동물원』『새, 블랙박스』『엄마』『왜 빨간 사과를 버렸을까요』, 산문집『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소설집『그림쟁이 ㅂㅎ』, 동화『동물원 이야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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