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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도_육필 서명본에 담은 시담『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검지 정숙자 2023. 2. 2. 01:58

 

    가을의 기도

 

    김현승(1913-1975, 62세)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이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전문, (『문학예술』, 1956. 11)

 

  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영혼의 숨결/ 모국어로 고독의 끝을  풀어낸 시인 김현승(발췌) _박이도/ 시인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이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독일어를 쓰는 시인이다. 그와 비견할 수 있는 김현승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동방의 위대한 서정시인이다. 이 두  시인이 각기 쓴 「가을날」과 「가을의 기도」는 가을을 소재로 한 신의 자연섭리에 감사와 경외敬畏의 정서를 자신의 혼이 담긴 모국어로 바친 헌사에 다름 아니다. 시인에게 모국어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신독愼獨한 성품의 소유자, 김현승 선생의 따님이신 피아니스트 김순배 씨는 아버지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게트처럼 딴딴하고 건조하지만 뚫고 들어가면 한없이 부드럽고 담백한 속살의 감격이  있다"고 했다. 이어 "내 아버지와 바흐는 많이 닮아 있다. 주변에 횡행하는 비리나 불합리를 묵과하지 못하고 기어이 의분을 표출했던" 분이라고. (p. 시 120-121/ 론 121) 

 

  * 블로그註: 육필과 사진 · 시담詩談, 그 외 내용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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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도_육필서명본(肉筆書名本)에 담은 시담詩談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2022. 3. 20. <스타북스> 펴냄

  * 박이도朴利道/ 1938년 평북 선천宣川 출생, 1945년 8.15 광복 후 월남, 1959년 ⟪자유신문⟫ 신춘문예 시 & 1962년⟪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63년 <신춘시> & 1963년 <사계> 동인, 시집『회상의 숲』『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민담시집』『있는 듯 없는 듯』 15권, 시선집『빛의 형상』『순결을 위하여』『반추』『삭개오야 삭개오야』『가벼운 걸음』등 6권, 전집『박이도문학전집』(전4권), 수필집『선비는 갓을 벗지 않는다』, 평론집『한국현대시와 기독교』, 번역시집『朴利道詩全集. 權宅明역』(일어),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 Translate by Kevin O'Rourke/Chang-Wuk Kang번역>(영어), 대한민국문학상 · 평운문학상 · 문덕수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