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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예술을 짓고 문학을 담다(부분)/ 이종성

건축, 예술을 짓고 문학을 담다(부분)      이종성    현대 건축은 장소와 용도 등에 따라 카탈후유크(Catalhuyuk)와 같은 고대 원시 건축 형태서부터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 강철 프레임과 유리 커튼 윌의 하이테크(High-Tech) 양식을 비롯하여 '부르주 할리파'와 같은 초고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혁신적인 사고가 혁신적인 건축을 만들어내며 끝없이 건축은 진화한다.  위에서 일별했던 바빌론의 건축들은 돌이 귀해 흙벽돌을 이용하였다.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벽돌은 조적식 구조의 건축 재료로 오랫동안 쓰여왔다. 어느 것이든 건축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활동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공간은 무엇인가를 담는다. 그 담겨지는 대상에 따라 공간은 다채롭게 변화한다.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

한 줄 노트 2024.06.07

건축은 공간에 쓰는 시(부분)/ 나금숙

건축은 공간에 쓰는 시(부분)      나금숙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 2014년 수상자인 야마모토는, 다양한 정체성, 경제, 정치, 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이미 만들어진 주택 시스템 안에서 사회에 영감을 주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야마모토는 공동체 사회를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감각"으로 정의하고, 현대의 주거 공간을 이웃과의 소통 기회를 없애고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깨트리는 건축가로, 그의 건축물은 단순하고 간결한 모듈식 모더니즘 양식을 통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삶이 발전될 수 있도록 문화, 역사, 전 세대의 시민들을 예민하게 연결한다. 그의 작품..

한 줄 노트 2024.06.07

집,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향기(부분)/ 김호운

집,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향기(부분)         문학과 건축의 상호 연결 텍스트      김호운/ 소설가    건축물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 결국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이 되었다.  집을 한자로는 家(가)라고 쓴다. 집 가家다. 이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宀(집 면)과 豕(돼지 시)로 나뉜다. 상형으로 보면 집(宀)에 돼지(豕)가 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집에 왜 사람이 아닌 돼지가 살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인간이 동굴에 살 때 뱀에게 물려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겼는데 돼지와 함께 사니 그런 일이 없어졌다. 피부 지방층이 두꺼운 돼지는 뱀에게 물려도 끄떡없었으며 오히려 잡식성인 돼지가 뱀을 잡아먹었다. 사람이 보호받기 위해 집안에 돼지를 길렀다는 뜻풀이가 설..

한 줄 노트 2024.06.07

서부시장 외 1편/ 함명춘

서부시장 외 1편      함명춘     아무리 팔월의 햇살이 길다 해도  이곳에 닿으면 칠부바지처럼 짧아지고 만다  남보다 하루를 먼저 살아가는 사람들  라면에 고춧가루를 훌훌 풀어 먹고는  햇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 한가운데에  부리나케 간이 천막을 치고  수레 가득한 생업들을 내려놓는다  결곡할 만큼 하얀 그들의 생애를 드러내며  하염없이 내려지는 배추단들,  그 배춧속의 싱싱한 허파를 꺼내 놓기도 하면서  그들의 하루는 시작된다  몇 번인가 뛰어내리려고 발버둥을 쳤던가  자식의 학년처럼 무섭게 올라가는 가난의 언덕에서  그들의 소원이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새가 되어 날아올라 보는 거  세상의 중력이 닿지 않는 저 구름 위에  한 채 둥지를 짓고 살아 보는 거  오늘도 가슴속에 소원 하나씩 ..

봉은사*/ 함명춘

봉은사*     함명춘    회사 근처라 자주 갔다  눈에 한 바구니 꽃을 캐어 오려고  귀에 한가득 새소리 담아 오려고  돌았던 길을 매번 걸으니 연꽃처럼 새겨진  나만의 둘레길이 사철 피고 지곤 했다  둘레길엔 관음보살 무릎 같은 돌이 있어서  쉬었다 가는 날이 많았다 그곳에서  승진은 필요 없고 오래 회사만 다니게 해달라고  불자도 아닌데 기도를 드렸다  사는 게 왜 내 마음 같지 않느냐며  대웅전까지 찾아 들어가 따져 물은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청초한 한 그루 홍매화보다  절 밖 고층 아파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내 맘속 소의 고삐를 붙들어 매 달라고 빌었다  언제나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는  부처의 크고 넓은 귀를 닮은 자비가   대로까지 날 마중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마음에 먹구름이..

붉은 파도 외 6편/ 정채원

디카시 : 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붉은 파도 외 6편      정채원    넘어야 할 경계가 있다  저 미친 구름은 그곳을 넘어서 왔다      -전문(p. 16-17)   Some boundaries are meant to be crossed.  The crazy clouds came across them.       -번역: 필자      ---------------------    버려진 것들 The abandoned       목이 꺾인 인형처럼  헌 양말처럼  담배 꽁초처럼   사랑받다가 버려진 것들   그래도 세상은 푸하하 호호       -전문(p. 16-17)   Like a doll with a bent neck,  Like a pair of old socks,  Like ..

고통의 뒷모습/ 정채원

디카시 : 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고통의 뒷모습  The back of pain      정채원    커다란 X표로 묶여 있는   뒷모습은 얼룩투성이   고통이 유독 선명한 날  그 바탕은 신록이다        -전문(p. 118-119)   Bound by a large X-mark,  The back is full of stains.   A day when pain is especially clear,  The background is full of fresh green.        -번역: 필자    해설> 한 문장: 인용된 시는 예수 십자가의 조형이다. 왜 어떻게 십자가가 숲속에 서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나 자료는 접혀 없다. 기독교에 있어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교리의 가장 핵심..

도굴꾼/ 정채원

디카시 : 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도굴꾼A grave thief      정채원    나는 당신을 도굴해서  내 무덤에 넣어야겠다     -전문(p. 48-49)   I'm going to steal you.  I'll put you in my grave.     -번역: 필자    해설> 한 문장: 인용된 시는 석축과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지하의 내부에서 멀리 밝은 바깥을 향해 찍은 사진을 담았다. 시의 문면文面으로 볼 때 어쩌면 왕릉과 같은 무덤의 석실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여기서 '나'와 '당신'이라는 선명한 두 실체를 전제하고, 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사진의 구도로 유추하지면 '나'는 '당신'의 공간을 침범하는 자리에 있고, 그 무례한 처사는 도굴꾼의 그것과 다를 바..

푸코와 열애 중/ 한소운

푸코와 열애 중      한소운    정오가 되어도 밤중같이 캄캄하다  운무에 싸인 산이 지워지고 있는 중이다  펜티멘토 안개로 덧칠된 그림  다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통! 통! 통!  베란다 샷시에 부딪치는 빗소리  마당 가의 놋 세숫대야에 떨어지던  유년의 그 비를 닮았다   대책 없이 빠져드는 비요일  이런 날은 음악을 들어도  산책을 해도 쓸쓸함이 따라온다  방에 앉아 있어도 귀는 그쪽으로 쏠리고   귀를 잘라야 하나   마음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터버리자  망설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가는  내 안의 나여!  피 끓던 연애 시절 밥때를 잊고, 잠을 잊었던  그때처럼 그에게로 빠져든다  거실 안방 작은방 가는 곳마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안경 너머의 번뜩이는 눈..

내 안의 개를 죽이는 법/ 최형심

내 안의 개를 죽이는 법      최형심    (사랑하지 않는 개를 본 적도 없고 울고 있는 물고기를 본 적도 없다.)   문을 열면 한밤중입니다. 하얀 소금 사원에선 가벼운 옷을 입고 떠날 수 있습니다. 공휴일의 로맨스는 뜨겁지 않았다고 사막여우의 밤을 빌립니다. 누군가 저물녘의 기원에 대해 묻는다면 수요일의 법원처럼 마음이 붐빌 것입니다.   (푸른 물 위에 침묵을 포개놓으며)   한 그루의 나무를 그려 봅니다. 은사시나무의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그를 기다리던 좁은 계단에선 물고기로 흘러갑니다. 성하盛夏의 한낮, 윤슬 위로 기관차 소리 지나가고   (마침내 고요가 된 개들이 서로를 마주보았을까.)   식물 모종에 이식한 오후 여섯 시는 언제나 거기에 있습니다. 백 년을 건너와 새로운 백 년을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