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 아버지」

검지 정숙자 2024. 6. 14. 01:58

 

    아버지

 

    이혜선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시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 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갯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떙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동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 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전문-

 

  언제면 기쁨 드릴까> 전문: 그때는 몰랐다. "삶"이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이라는 걸, 아버지 가슴에도 때로는 겨울벌판 가로지르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마을 앞 둥구나무처럼 꿋꿋이 버티고 서서, 내게 닥치는 어려움을 다 막아주는 튼튼하고 든든한 울타리로만 알았다.

  가슴에 불던 바람은커녕 그 손에 박혀 있던 옹이도 보지 못했다.

  가족 위해 한평생 다 바치고 마지막엔 혼자 남아서, 자식들 다 날아간 빈 둥지만 지키며, 자식 마음 불편할까 봐 기다림은 안으로 감추고 먼 산만 바라보시는 아버지.

  바쁜데 안 와도 된다고, 니 마음 내 다아 안다고···

  이제 어깨가 기우뚱, 허리도 굽어지신 아버지,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어리석은 우리는 무엇으로 부모님의 울타리가 되고 큰 그늘이 되어 드릴까? 언제면 "바쁘다, 바쁘다" 낚아채는 시간의 그물에서 벗어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드리고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철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아니 계신 것을··· (p. 시 254-255/ 론 256) <저자/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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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에서/ 2019. 5. 17. <지혜> 펴냄

* 이혜선/ 1980~1981년 월간『시문학』 2회 추천으로 등단, 시집『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새소리 택배』『운문호일雲門好日』, 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New Sprouts You』(영역시집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