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혜선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시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 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갯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떙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동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 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전문-
언제면 기쁨 드릴까> 전문: 그때는 몰랐다. "삶"이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이라는 걸, 아버지 가슴에도 때로는 겨울벌판 가로지르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마을 앞 둥구나무처럼 꿋꿋이 버티고 서서, 내게 닥치는 어려움을 다 막아주는 튼튼하고 든든한 울타리로만 알았다.
가슴에 불던 바람은커녕 그 손에 박혀 있던 옹이도 보지 못했다.
가족 위해 한평생 다 바치고 마지막엔 혼자 남아서, 자식들 다 날아간 빈 둥지만 지키며, 자식 마음 불편할까 봐 기다림은 안으로 감추고 먼 산만 바라보시는 아버지.
바쁜데 안 와도 된다고, 니 마음 내 다아 안다고···
이제 어깨가 기우뚱, 허리도 굽어지신 아버지,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어리석은 우리는 무엇으로 부모님의 울타리가 되고 큰 그늘이 되어 드릴까? 언제면 "바쁘다, 바쁘다" 낚아채는 시간의 그물에서 벗어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드리고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철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아니 계신 것을··· (p. 시 254-255/ 론 256) <저자/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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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에서/ 2019. 5. 17. <지혜> 펴냄
* 이혜선/ 1980~1981년 월간『시문학』 2회 추천으로 등단, 시집『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새소리 택배』『운문호일雲門好日』, 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New Sprouts You』(영역시집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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