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252

『시터』동인 제8집 뒷글/ 황상순 · 정영숙

『시터』 동인 제8집 뒷글 황상순 · 정영숙 명당明堂, 좋은 자리. '터'라는 말 참 좋다. 정겹다. '터'라 하면 사전적으로는 궁궐터, 절터, 우물터 등 건물이나 구조물이 들어서야 하는 맞춤한 자리(땅) 또는 어떤 일을 이루는 밑바탕이나 그 근간을 일컫는 말인데 써놓고 봐도 소리를 내어 읽어봐도 참 정감이 가는 든든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시터' 시의 밑바탕, 시의 고향, 시의 근간, 시가 편안히 머무는 곳, 시가 있을, 있어야 할 맞춤하고 좋은 자리(땅)! -부분(p. 150) / 『시터』 5집_ 황상순 시인의 中 정영숙, 최금녀, 최도선, 한이나, 황상순, 노혜봉, 신명옥, 신원철, 윤경재, 이명, 이미산 등. 열한 명의 긴 숨비소리를 세상 밖으로 내놓는다. 12년째 시의 터를 야무지게 다지고 ..

권두언 2024.02.08

곡선적 사고의 미학/ 강기옥

곡선적 사고의 미학 강기옥 미술에서 공간은 절대적 요소다. 선線으로, 점點으로, 때로는 면面으로 이루어낸 공간은 곧 미술 그 자체다. 고대 동굴벽화는 의도적으로 그린 선들이 다양한 면을 이루어 뜻하는 바의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단순히 그은 선을 미술이라 할 수 없다. 시대가 흐르면서 공간적 요소의 건축이 나타나고 색채를 곁들인 회화가 나타나 시대별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심지어 다다이즘의 전위예술과 설치미술까지 나타나 현대인의 시각을 유혹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읽어내기 어렵다. 세칭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회적 비판이 모든 예술에 해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요즈음의 예술인들은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려고 노력하여 상당한 호응을 ..

권두언 2024.01.23

『다층』지령 100호_편집 후기(부분)/ 변종태 · 전형철 · 편집실

『다층』지령 100호_편집 후기(부분) 변종태 / 전형철/ 편집실 ■ 100번의 계절을 피고 졌습니다. 100편의 시가 열렸습니다. 첫걸음을 디디던 날의 설렘을 기억하겠습니다. 문단 안팎에서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질책의 말씀들이 오늘의 『다층』을 만들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p. 197) // 변종태 ■ 바다 없는 산골 출신이 사방이 바다인 책편에 인연이 닿았다. 42호부터 함께한 『다층』이 100호를 맞았다. 그간 청년 시인은 중년이 되었고, 『다층』은 바다가 그런 것처럼 변화무쌍하며 켜가 두터워졌다. 아득한 길을 외로운 혼魂으로 걸어가는 수승殊勝한 시인들을 기억한다. 그 걸음 멈추지 않는 한 『다층』은 늘 창간호다. (p. 198)// 전형철 ■ 작품은 시인과 시조 시인들에게 그동안 『다층』에 실린..

권두언 2024.01.14

『다층』지령 100호 특집 시 100을 내며/ 편집진 일동

『다층』지령 100호 특집 시 100을 내며 편집진 일동 IMF 외환 위기가 극성을 부리던 1999년 을 목표로 『다층』을 창간한 지 2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층씩 쌓아 올린 벽돌 100장을 내려놓습니다. 몇 층이 될지 애초 기약은 없었습니다. 그냥 한 층씩 올리다 보니 100층이 되어버렸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 책 한 권을 앞에 놓고 100번의 계절을 돌아봅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층의 울타리를 들락거렸습니다. 그 발자국을 일일이 열거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합니다만, 깊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다층』에 실린 작품 숫자는 1만 편이 넘습니다. 그중에 100편을 골라 지령 100호 특집호를 마련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100호를 꾸리고 여러분을 만날까 깊은 고..

권두언 2024.01.14

잘살고 못사는 게/ 장호병(수필가)

잘살고 못사는 게 장호병/ 수필가 말은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어제까지 입 안의 혀와 함께 뒹굴던 말도 환경이 바뀌어 상대해주지 않으면 온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더러는 세상이 바뀌어도 그냥 붙박이로 눌러붙어 우리 삶의 잣대 역할을 한다. "먹고 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된다네." " 살 집은 있단다." 한때 딸 가진 어머니들에겐 귀가 솔깃했던 말이다. 이를 눈치챈 매파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신랑감의 능력을 한껏 부풀렸다. 양쪽이 만족스럽게 성사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자칫 잘못 엮으면 뺨이 석 대이다. 뻥을 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도 일단 연을 맺으면 무를 수도 없는 일이 혼사이다. 세상사 뜻대로만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미도 딸도 '잘살고 못사는 건 팔자'라 위안하며 살았으리라. 이 말이 ..

권두언 2024.01.12

강의 소년과 디오티마(부분)/ 허만하

강의 소년과 디오티마(부분) 허만하 4. 디오티마를 찾아서 김성춘 시인은 횔덜린의 디오티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궁금해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정체가, 아직까지 철학자들의 살아 있는 연구 과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다. 사랑은 이 두 극단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가. 디오티마는 순진하게, 치열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으면서 함께 생각하기를 청하는 이상한 힘인 것이다. 그 힘의 덫에 경주 형산강 기슭에서 음악을 하며(철학하다-philosophieren-)살고 있는 김성춘이 걸려든 것이다. 디오티마는 횔덜린에게, "나는 아이를 바라지 않습니다. 노예의 세계에 아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먼저 단호하게 말한다. 디오티마는 다시 말한다...

권두언 2024.01.10

작가 김성동의 글씨_'사행풍우(士行風雨)'/ 이동순(李東洵)

작가 김성동의 글씨 '사행풍우士行風雨' 이동순李東洵 참으로 귀한 편지와 글씨 하나를 찾았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 김성동(金聖東, 1947-2022, 75세)이 울분에 차서 거리를 쏘다니다 돌아와 분연히 편지를 쓰고 또 먹을 갈아서 떨리는 손으로 쓴 '사행풍우士行風雨'. 이 네 글자를 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백석시전집』(창비, 1987)이 출간된 바로 그해 말이다. 나는 벗의 글씨를 서가의 받침대에 올려두고 틈날 때마다 그 앞에 서서 진정한 선비, 지식인의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혼자 곰곰이 음미하고 반추했던 것이다. 아마 이 제목으로 시도 한 편 썼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찾을 길 없다. 난세亂世란 것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꼴이 보이질 않는데 이 혼탁한 세상에서 벗이 써보낸 '사행풍우'..

권두언 2024.01.04

겨울 산/ 신달자

겨울 산 신달자 문이라는 문은 다 닫고 드는 길도 모두 지워 희고 큰 보자기로 산을 한 뭉치 싸 맨 것 같이 보인다 설산의 위엄으로 빛나는 오대산의 신전 같은 백덕산 저 하얀 보자기를 신이 달랑 들고 갈 것인가 신비는 근접하기 어렵지만 문 없는 저 안에 내가 있을까 나는 나를 찾아 눈이 쌓여 벌써 며칠째 길이 단절된 너무 하얘 공포스러운 은빛 보자기 속을 기어오른다 반쯤의 몸을 산에 내어 주다가 내친김에 온 몸을 산속으로 밀어 넣는데 거기 날 받은 손이 있을 것인데 무슨 일로 의기투합해 한 덩어리가 된 억세게 끌어당겨 더욱 하나가 될 밖에 없는 겨울 산 혹한 속엔 서로 앙칼진 포옹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다 얼어붙어 너도 나도 없는 내 발자국 소리까지 끌어 들여 얼음은 더 두꺼워지는데 시퍼렇게 날 선 바..

권두언 2023.12.21

시동인『미루』, 그 양양한 시의 벌판/ 문효치

미루, 그 양양한 시의 벌판 문효치 우리 시문학의 초창기는 동인지들이 우리 문학을 끌고 갔다. 일테면『창조』『폐허』『백조』『영대』『금성』『시인부락』『장미촌』등이 그것이다. 이들 동인지는 우리 문학인들의 중요한 활동무대였으며, 우리 문학을 이끌어가는 향도였다. 특히 시에서는 이러한 동인지들이 창작에너지의 근원지였으며 많은 시인이 이 에너지에 힘입어 시를 썼다. 동인지 활동의 장점은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으며, 비슷한 시관을 가지고 공동의 문학적 지향을 향해 기상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등단지, 문단 연조, 작품 성향 등을 따지면서 필자를 선정하는 것이 대체로 문예지들이 보이는 청탁의 조건들인데 동인지에서는 그런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글을 쓰고 ..

권두언 2023.12.16

시동인『미루』의 창을 열며/ 하두자

미루의 창을 열며 하두자 이제 막 당도한 가을의 심장에 손을 쑤욱 집어넣고 가을을 휘저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납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이 의기투합하여 시의 심장에 자신들을 쑤욱 집어넣고 시를 휘저어 보려 합니다. 각각의 시인들은 자신만의 시를 두 어깨에 걸쳐 메고 한순간의 쉼도 없이 터벅터벅 걸오온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미루'의 탄생을 알립니다. 뒤라스가 『고독한 글쓰기』에서 '쓴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비로소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들은 쓰되 설명하지 않고 말하되 공허하지 않고 침묵하되 거대한 메아리처럼 독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인들입니다 시가 때론 자연을 노래하고, 때론 서늘한 존..

권두언 202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