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겨울 산/ 신달자

검지 정숙자 2023. 12. 21. 00:48

<권두시>

 

    겨울 산

 

    신달자

 

 

문이라는 문은 다 닫고 드는 길도 모두 지워

희고 큰 보자기로 산을 한 뭉치 싸 맨 것 같이 보인다

설산의 위엄으로 빛나는 오대산의 신전 같은 백덕산

저 하얀 보자기를 신이 달랑 들고 갈 것인가

신비는 근접하기 어렵지만 문 없는 저 안에 내가 있을까

나는 나를 찾아 눈이 쌓여 벌써 며칠째 길이 단절된

너무 하얘 공포스러운 은빛 보자기 속을 기어오른다

반쯤의 몸을 산에 내어 주다가 내친김에 온 몸을  

산속으로 밀어 넣는데 거기 날 받은 손이 있을 것인데

무슨 일로 의기투합해 한 덩어리가 된

억세게 끌어당겨 더욱 하나가 될 밖에 없는

겨울 산 혹한 속엔 서로 앙칼진 포옹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다 얼어붙어 너도 나도 없는

내 발자국 소리까지 끌어 들여 얼음은 더 두꺼워지는데

시퍼렇게 날 선 바람이

베인 귀를 다시 베어 가고 나는 엎드렸는데

어느 곳이나 살아있는 것은 정지되지 않아

더 깊은 결빙의 지역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아 무서워 산이

더 꽉 조이며 땅속까지 울리고 과도한 침묵도 얼어터져

폭죽소리를

내는 겨울 산

 

나는 오르지만 나는 산 아래 깔리고 하늘이 가깝게 날 덮어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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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권두시> 에서

  * 신달자/ 1972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봉헌문자』『겨울축제』『모순의 방』『아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