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강의 소년과 디오티마(부분)/ 허만하

검지 정숙자 2024. 1. 10. 01:56

 

    강의 소년과 디오티마(부분)

 

     허만하

 

 

  4. 디오티마를 찾아서

  김성춘 시인은 횔덜린의 디오티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궁금해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정체가, 아직까지 철학자들의 살아 있는 연구 과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다. 사랑은 이 두 극단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가. 디오티마는 순진하게, 치열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으면서 함께 생각하기를 청하는 이상한 힘인 것이다.

  그 힘의 덫에 경주 형산강 기슭에서 음악을 하며(철학하다-philosophieren-)살고 있는 김성춘이 걸려든 것이다.  

  디오티마 횔덜린에게, "나는 아이를 바라지 않습니다. 노예의 세계에 아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먼저 단호하게 말한다.

  디오티마는 다시 말한다. 

  1. 사랑하는 휴페리온이여, 그런 일을 모두 알아 버리고 난 뒤, 나는 이제 유약한 소녀가 아닙니다. 욕을 받은 내 가슴은 떨림을 멈추지 않고, 다시 지상을 바라보지 않으리라 분격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2. 안녕하시지요. 사랑하는 젊은이여, 혼을 바칠 만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일터 희생의 장소 하나쯤 있겠지요. 훌륭한 사람들이 일장 꿈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쉽기 한정 없는 일이지만, 어떤 최후를 맞이하시더라도, 당신은 신들 곁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꽃이 피듯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던 비밀은 먼저 실러가 간행하던 『Neues Thalia』(1794)에 실렸다.

  그 대화를 기록하는 것을 업으로 횔덜린은 삶을 이어 갔다. 1794년, 프랑크푸르트에 가서도 조그마한 단편을 썼다. 그 기록들을 모아 『휴페리온』을 간행한다.

  저자인 횔덜린은 1843년 6월 5일 창밖으로 달빛에 젖어 있는 튀빙겐을 바라보며 잠들었다. 그리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세계의 배신에 절망한 젊은이가 숲의 현인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 나서 노타라에서 알게 된 한 풋풋한 소녀를 왜 '디오티마'라 불렀는지 의심한다. 디오티마플라톤『심포지엄』에 나오는 사랑의 스승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와 무지와 싸우는 지의 사랑을 토론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순진한 디오티마가 횔덜린을 절망에서 구출해 낸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용모는 전혀 모른다. 아무도 그 여인의 몸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 여인을 튀빙겐에서 성장한 횔덜린 사상의 메아리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디오티마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사랑의 은유라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흔히 존재를 '이다', '아니다'로, 직선으로 가른다. '사이'를 말살한다. 과연 중간의 존재 이유를 지우는 일이 가능할까. 마침 이때 찾아든 것이 현대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사상이다. 벽은 둘로 가르는 칸막이이기 때문에 둘을 잇는 매체일 수 있다는 신비주의적 신학 사상.

  키가 큰 옥수수 잎사귀가 가을바람을 기다려 서걱일 무렵까지 사색이 더 익어, 더 여물어질 것 같다. (p.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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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 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 '권두 시론' 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허만하/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해조』『언어 이전의 별빛』, 시론집『시의 근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