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
미루의 창을 열며
하두자
이제 막 당도한 가을의 심장에 손을 쑤욱 집어넣고 가을을 휘저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납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이 의기투합하여 시의 심장에 자신들을 쑤욱 집어넣고 시를 휘저어 보려 합니다. 각각의 시인들은 자신만의 시를 두 어깨에 걸쳐 메고 한순간의 쉼도 없이 터벅터벅 걸오온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미루'의 탄생을 알립니다.
뒤라스가 『고독한 글쓰기』에서 '쓴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비로소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들은 쓰되 설명하지 않고 말하되 공허하지 않고 침묵하되 거대한 메아리처럼 독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인들입니다
시가 때론 자연을 노래하고, 때론 서늘한 존재를 노래하고, 때론 소멸로 향하는 것들을 한 번 더 불러보기도 하지만 궁극은 내게서 뻗어 나가는 나를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뜨겁습니다. 뜨겁다 못해 타들어 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린 기꺼이 그러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시인이 아니라 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시인들이니까요.
-전문(p. 10-11)
낮달이 선명한 가을날
하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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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동인 『미루』(1호_창간사)에서/ 2023. 11. 11. <상상인> 펴냄
* 하두자/ 199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프릴원피스와 생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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