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잘살고 못사는 게/ 장호병(수필가)

검지 정숙자 2024. 1. 12. 03:13

 

    잘살고 못사는 게

 

    장호병/ 수필가

 

  말은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어제까지 입 안의 혀와 함께 뒹굴던 말도 환경이 바뀌어 상대해주지 않으면 온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더러는 세상이 바뀌어도 그냥 붙박이로 눌러붙어 우리 삶의 잣대 역할을 한다. 

  "먹고 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된다네."

  " 살 집은 있단다."

  한때 딸 가진 어머니들에겐 귀가 솔깃했던 말이다. 이를 눈치챈 매파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신랑감의 능력을 한껏 부풀렸다. 양쪽이 만족스럽게 성사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자칫 잘못 엮으면 뺨이 석 대이다. 뻥을 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도 일단 연을 맺으면 무를 수도 없는 일이 혼사이다. 세상사 뜻대로만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미도 딸도 '잘살고 못사는 건 팔자'라 위안하며 살았으리라.

  이 말이 널리 회자될 당시 메슬로의 생각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급하고 급한 일은 당장 먹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입에 풀칠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항우장사라도 이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먹거리가 해결되면 그때나 지금이나 내 집 마련이라는 큰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 양자가 유족해 보일 때 잘산다고 말한다. 3대가 적선을 하였거나, 뼈 빠지게 일을 하여도 잘살기는 쉬운이 일이 아니다.

  잘산다고 써야 하나, 잘 산다고 써야 하나?

  우리 말에서 띄어쓰기는 대학을 졸업한 이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띄어 써야 할지 붙여 써야 할지 망설여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하나의 개념일 때 붙여쓰기를 허용한다. 말이 허용이지 사실은 붙여 써야 개념의 혼동을 피할 수 있다. 가위바위보는 3개의 각각 다른 명사가 모였지만 특정된 놀이나 게임을 나타낼 때는 합성명사니까 붙여 쓴다. '공중전화'와 '공중화장실'은 도입 당시에는 복합명사였기에 띄어쓰기를 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합성명사가 되어 사전에 등재되고 붙여 쓴다. 반면에 '쓰다'라는 동사 앞에 쓰일 때는 두 개념이기 때문에 띄어 써야 한다. 시대나 상황에 따라 용례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각설하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던 시대에는 개미형 인간의 삶이 미덕이었다. 그 세대에겐 잘살다와 못살다가 유족하냐 궁핍하냐를 구분하는 일리 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밤을 낮 삼아 일한 개미형 생활 덕분에 우리는 단군 이래 어느 때보다 큰 풍요를 구가한다. 이제 가난은 나라가 구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나라에서 쌀독을 채워준다. 그러나 허리가 휘도록 일하여 얻은 골병을 대통령도 구제할 수 없다.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을 지루해하면서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길 갈망한다.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돈을 벌어서는 건강을 되찾으려고 그 돈을 쏟아붓고,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여 결국 미래에도 현재에도 발을 붙이지 못한다. 상처 주는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기도 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한 번도 살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죽어가는 게 우리 삶이라 했던가.

  언어는 구성원들 간에 짜릿하게 소통하는 도구이다.

  대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 씁쓸한 끝을 보면 대화는 오히려 '대놓고 화내다'의 준말이요, 돈 씀씀이가 헤픈 젊은이들에겐 '재물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재벌이란 아재개그가 썰렁한 국면을 쉽게 벗어나게 한다.

  반짝반짝 찰진 말을 들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센스가 둔한 사람을 형광등이라 이른다든지, 집성촌에서 특정 성씨의 못자리라는 표현은 사회문화적 현상이 투영된 비유이지 은어가 아니다.  반하다의 뜻으로 '이분의 일' 데이트를 '12시'로 표현하는 등 특정 집단의 바깥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또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은어이다. 그 은어도 시간이 지나 세인들이 다 알아듣게 되면 그 생명을 잃는다.

  신조어에는 동시대인들의 사회현상이나 문화가 반영된다. 국립국어원은 새로 생겨나는 말들을 지속적으로 살펴 5년 이상 사용되는 말을 대상으로 표준어로 등재할 것인지를 심의한다.

  눔프족은 복지를 부르짖지만 중세에는 반대하는 무리를 눔프(NOOMP; Not of My Pocket)와 '족'을 결합해 만든 말이다. 가파른 물가 상승에도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임금의 경우 '임금 절벽'이라 하고, 교육열 높고 사교육 정보에 정통하여 어머니들을 이끄는 어머니는 새끼돼지를 잘 데리고 다니는 돼지에 비유하여 '돼지맘'이라 일컫는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를 줄여 '금사빠녀'라 부른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 있나 하면 '만반잘부'란 말도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의 뜻이란다. 어리둥절하겠지만 신조어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치맥이나 심쿵은 본딧말로 길게 말하는 것보다 이미지가 선명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잘러'란 말이 보편화되어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영어의 접미어   er을 연상하여 만든 신조어이다. 일잘러가 있다면 일못러도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언어는 시대상황에 따라 생겨나고 진화를 거듭하거나 소멸한다. 

  사전이나 문법은 언어가 무질서하게 변화하거나 진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시대변화의 반영을 가로막는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그 가운데 즐거움을 찾았던 선인들이야말로 잘사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리라.

  현재를 놓치지 말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me), 한 번뿐인 인생 허방짚지 말라는 욜로(YOLO), 일과 삶에서 균형을 이루라는 워라벨(Work-Life-Balance) 등이 현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화두가 된 지 오래이다. 잘산다는 게 성취한 부의 정도에 있지 않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슬기롭고 바른 생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보람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잘살다'란 어휘의 진화 또는 이런 삶을 표현하는 기발한 신조어를 기대한다.

     -전문(p.22~25)

  ----------------------------

  * 『월간문학』 2023-11월(657)호 <권두언> 에서

  * 장호병/ 수필가, 1992년 수필집『웃는 연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수필집 『눈부처』『너인 듯한 나』등, 현)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