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곡선적 사고의 미학/ 강기옥

검지 정숙자 2024. 1. 23. 02:28

 

    곡선적 사고의 미학

 

    강기옥

 

 

  미술에서 공간은 절대적 요소다. 선으로, 점으로, 때로는 면으로 이루어낸 공간은 곧 미술 그 자체다. 고대 동굴벽화는 의도적으로 그린 선들이 다양한 면을 이루어 뜻하는 바의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단순히 그은 선을 미술이라 할 수 없다. 시대가 흐르면서 공간적 요소의 건축이 나타나고 색채를 곁들인 회화가 나타나 시대별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심지어 다다이즘의 전위예술과 설치미술까지 나타나 현대인의 시각을 유혹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읽어내기 어렵다. 세칭 '그들만의 리그'라는 사회적 비판이 모든 예술에 해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요즈음의 예술인들은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려고 노력하여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 예술인 스스로가 '예술인을 위한 예술'의 전문성보다 일상의 편의와 정감에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다"

 

  이상 세계를 이루고자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피카소의 이 말은 모든 예술인이 새겨들어야 할 잠언이다. "도를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는 노자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말로 일정한 고정관념에 구속받지 말라는 뜻이다. 즉 도라고 하는 가치의 틀에 갇히지 말라는 이 철학적 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고전 양식,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이어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틀에 박히지 않는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는 생활예술의 한 분야를 이루었다.

  회화에서는 선보다 면을 중시하거나 선으로 면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건축에서는 선과 면으로 건물의 건물의 이름다움을 장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고층 건물의 외벽을 꾸민 문양들이 곡선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구엘공원건물들이다. 이들은 곡선을 이용하여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직선은 인위적인 선으로 날카롭고 공격적이다.그러나 곡선은 자연이 준 선으로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휴식의 정감을 준다. 그러나 우리에게 직선은 발전의 상징이었다. 고속도로를 내고 국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곡선을 펴 빠른 발전을 꾀했다. 속도감에 빠져 인간적 정감을 나눌 수 없는 인위적인 조형의 상징이 직선인 것이다. 경제 발전의 시대에는 성냥갑 같은 건물, 각을 세운 승용차, 네모난 아파트 등 모든 게 직선이어서 그 빠르게 서두르는 문화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성급하게 서둘러대는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든 것이다.

  옛 선비들은 서두름이 없는 굽은 길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여유로운 삶을 즐겼다. 이를 회복하고자 '슬로우 시티' 제도를 도입했으나 한적한 시골이나 갯벌이 있는 섬마을 등의 전유물처럼 되었다.

  생활을 늦추듯 이제는 예술인들이 여유로운 삶을 회복하는 곡선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 요즈음에는 각 분야에 곡선을 적용하는 문화가 나타나 눈과 귀가 즐겁다. 그러나 일상에서의 직선화는 젊은이일수록 심각하다. 자기 주장이 강한 세대, 그 속에서 꼰대들의 목소리는 주눅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직선을 바로 잡아 자연이 만든 곡선 회복에 예술인들이 힘써야 할 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직선과 직선이 상대를 향해 날카로운 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 대중들도 모두가 직선적 사고와 직선적 행동에 만연해 있다. 더구나 문화 예술인마저 직선으로 날카롭게 각을 세운다면 우리의 일상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누구는 점으로, 누구는 직선으로, 누구는 곡선으로 이 사회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인 것이다.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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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온문학』 2023-봄(35)호 <권두언>에서

  * 강기옥/ 한국문협유적탐사연구위원장, 서초문화대학 문화해설사 지도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