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
손한옥
눌러진 울음 사이에 걸린
이별의 아픔을 견디는 방법
말 같지 않은 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말로 위무하던 시간
자꾸 깜빡이는 눈으로 번쩍이는 레일만 바라본다
연착 없는 열차 당도하고 충된 눈동자
창문이 두꺼워 다행이다
코비드로 가린 마스크가 다행이다
11호 차 D 6번
역류하는 눈물
홀연히 돌아가는 사랑이여
별나라 엄마와 아버지와 오빠를 재생하던 기억들
이제 나는 다시 어둠의 바탕에 불을 지펴
홀로 일어서야 하는 날들
가락국 김해와 안양 땅의 멀고 먼 여백
한결로 내 무게를 떠받치고 운행하는
이탈할 수 없는 혈의 궤도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집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에서 손한옥 시인은 자신의 가장 깊은 기억 속에 깃든 존재의 기원(origin)을 탐색함으로 모두冒頭를 연다. 전율적 감동의 원형은 그간의 시집에서도 익히 확인된 바 있으나 현실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항력 또는 불확정적 삶에 내맡겨진 일상에 대한 세밀한 포착으로부터 출발한다.
*
이 모든 시적 통로를 운용하는 변할 수 없는 기율의 본모습을 우리는 이(위의)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손한옥 시인이 쌓아온 또는 가꿔온 세계수(Yggdrasil)의 뿌리에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선험과 '여기'라는 공간의 전신轉身을 넘어 인간 본래의 지극한 긍정과 사랑이 있다. 신산한 삶을 견뎌온 유구한 기록의 시편들을 거쳐 경험적 구체具體의 예술적 상상의 원리를 마련해 간 시인의 시편은 근원 너머 '마음의 작품'을 옹호하는 시적 지향의 현현(epiphany)을 보여준다. (p. 시 112-113/ 론 153 · 162) <전형철/ 시인 · 연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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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에서/ 2024. 7. 30. <문학과사람> 펴냄
* 손한옥/ 2002년『미네르바』로 시 부문 & 2016년『한국미소문학』으로 동시 부문 등단, 시집『목화꽃 위에 지던 꽃』『직설적 아주 직설적인』『13월 바람』『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얼음강을 건너온 미나리체』, 동시집
『햇빛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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