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 저어새
문정영
부리부터 눈까지 검은 당신은 그때 겨울 깃이었지
가슴 가득 품었던 노란색이 사라지며 풍경에서 멀어져가고 있었어
저어, 저어 하며 차가운 햇살을 물고 물었던 말들
당신이 견디었던 작은 노란 반달 모양의 상처들
우리는 차가운 겨울밤에 번식깃을 지나갔지
내게서 번져 당신에게 옮아가는 눈물은 참 붉었지
저어, 저어 하며 날아가고 싶은 날개를 비벼대던
당신은 멸종하는 어느 새의 날갯짓을 습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등 움츠리고 걸어가던 인사동 골목 한지 불빛 아래서
갈 곳 잃어버린 새 떼들이 날아올랐지
습지는 가벼웠고 오염된 구석은 무서웠어
저녁은 귓속말을 잊어버렸을까
우리는 저어새처럼 따뜻한 곳으로 슬픔을 옮기고 말았지
-전문(p. 14-15)
◈ 표4> 문정영의 시는 삶의 찰나를 응시하며 쓴 서정적 이야기다. 혼잣말이다. 따뜻한 물음이고 뼈 아픈 실언이다. 그는 기억이나 감정을 날실과 올실 삼아 삶의 비밀을 직조한다. 어디에도 거짓과 허장성세가 없다. 올곧고 정직하다. 「저어, 저어새」「탄소발자국」 같은 시는 깊은 관조의 시선이 도드라진다. 시집에는 이런 매혹적인 수작들이 풀숲에 머리를 처박은 꿩같이 숨어 있어 읽는 기쁨을 선사한다. 장석주(시인, 계간『시산맥』 주간)
◈ 표4> 문정영 시인을 오래 곁에서 지켜보며 내가 얻은 단어는 '어질다'였다 여러 사람을 살피고 돌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어진 이, 헤아리고 살피는 사람의 문장은 단단하고 깊고 다정하다. 곧고 순일한 마음은 멀리, 또 깊이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문정영 시인에게서 배웠다. 어진 니는 저어할 줄 알기에 "따듯한 곳으로 슬픔을 옮기"(「저어, 저어새」)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시인의 성정을 닮아 편안하고 선선하여서, 곁에 두고 오래 마음을 기대고 싶은 시집이다. 이혜미(시인, 계간『시산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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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술의 둠스데이』에서/ 2024. 8. 30. <달을쏘다> 펴냄
* 문정영/ 전남 장흥 출생,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낯선 금요일』『잉크』『그만큼』 『꽃들의 이별법』『두 번째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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