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석조전
안희연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의 석조전.
낮에는 가본 적 있다.모든 것이 매끄럽고 선명했다. 기둥의 수, 창문의 투명도,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 나무의 위치까지도.
낮엔 다 볼 수 있었다. 돌인지 자갈인지 모래인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밤이어야만 했다. 백 년 전의 사람들, 백 년 전의 비, 백 년 전의 쇠락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면
모든 돌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고. 나는 이 거대한 돌이 말하게 하고 싶었다.
티켓을 끊고 들어간 밤의 석조전은 인공적인 빛에 휩싸여 있었다. 야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밤의 석조전이 감추고 있는 밤의 석조전으로 들어가려면.
눈은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열지 못한다. 닫을 수 있을 뿐이다.
여러 겹의 달빛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한 사람이 눈을 감았다 뜨는 소리는 몇 데시벨일까. 꽃병 속에서 줄기가 짓무르는 소리는?
몇 걸음 못 가 돌아봤을 때, 아닌 척 눈을 부릅뜨는 밤이 보였다. 실핏줄이 드러나 피곤해 보이는 눈이었다.
-전문(p. 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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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3월(411)호 <현대시작품상 본심 추천작 3> 에서
* 안희연/ 시인,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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