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안지영_ 영원이 된 시의 무늬(발췌)/ 빗살무늬 : 송재학

검지 정숙자 2024. 8. 4. 03:04

 

 

 

    빗살무늬

 

    송재학

 

 

  어떤 무늬가 너의 몸에 기워진 건 알고 있니,  물고기 뼈처럼 생긴 무늬는 희고 촘촘하면서 지워지지 않을 게 분명해, 거치무늬, 격자무늬, 결뉴무늬, 궐수무늬, 귀면무늬, 기봉무늬, 길상무늬,  능삼무늬, 무늬의 이름을 말해보다가 마지막에 만난 빗살무늬, 무늬를 처음 그려본 사람은 어떤 슬픔에 누웠을까, 눈물이 흘러 앞섶을 적신다면 이런 무늬는 오래 기억할 수 있어, 그게 가엽지만 나쁘지만 않아. 주검을 포함해서 희로애락을 덮을 수 있는 호의는 지상에 가득 널렸어

    -전문(p. 116)

 

  영원이 된 시의 무늬(발췌)_안지영/ 시인

  「빗살무늬」에서 시적 주체는 우리 몸에 어떠한 무늬들이 기워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무늬가 너의 몸에 기워진 건 알고 있니 (···중략···) 어떤 슬픔에 누웠을까, 눈물이 흘러 앞섶을 적신다면 이런 무늬는 오래 기억할 수 있어, 그게 가엽지만 나쁘지만 않아" 슬픔이 새긴 무늬를 기억하고자 우리에게는 손과 입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슬픔에 대한 긍정에 이르기까지 애면글면 우리가 가진 것들을 아끼고 보듬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은 종말론의 불가능을 사유케 함으로써 이 세계에 늘 존재하고 있던 영원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인은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었을 그 영원의 귓속말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허무주의의 도저함이 세계를 향한 포용으로 몸을 바꾸는 이 뜨거운 장면이 문득 목격된다. 이것 역시 결국 믿음의 일부에 불과할 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p. 시 116/ 론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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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3월(411)호 <현대시작품상 본심 추천작 2/ 작품론> 에서  

  * 송재학/ 시인, 1986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등

  * 안지영/ 문학평론가,  2011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천사의 허무주의』『틀어막혔던 입에서』, 역서『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