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꽃밭 천상별밭▼
망우리 공동묘지
김영산
사는데 이유가 없지만
죽는데 이유가 많다
나는 죽어서 묻혔노라,
살아 있는데 죽음보다 큰 고통이 온다면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힌 것이다
소나무 가지마다 올가미가 보이고
"시마왕이 아니라면 나를 무덤에 데리고 올 수 없어!"
그도 아니라면, 나쁜 시가 벌이는 놀이인지 몰라? 나쁜 시는 있느냐
모두 꿈이길 바라지만
누군가 내 시를 무덤에 가두고
봉합하여
봉분을 만들어 꽃밭을 가꾼다,
일찍이 나도 죽은 그녀를 위해
산상꽃밭 천상별밭의 시를 써서
애인의 묘비에 깨알 글씨로 쓴 적이 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돌이켜보니
『하얀 별』이란 시집이 파비가 되기 전에 시가 이랬다
내 시는 장시가 아니라 시설詩設이어서
내가 시를 누설한 죄는
우리은하 중심에 은하태양이 있다고 말했던 일
그러나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니
그녀 무덤에 나를 합장하여
다시 봉분을 만들어다오!
가엾은 두 시인을 위해
한 편의 우주 시설을 쓰다 죽은 나를 위해
무덤 앞에 시집을 펼쳐 놓아다오!
시 때문에 죽었지만 시 때문에 살 수 있도록
내 시와 시설을 읽어다오,
좀 길지만, 「산상꽃밭 천상별밭」이란 시는 이랬다
그녀의 뼈를 산상꽃밭에 뿌려요. 고운 분말 뿌리에 스미면 꽃은 피고 꽃밭의 묘지기인 나는 꽃마중하리니, 꽃들이 환한 계절 어느 영혼인들 돌아오지 않으랴. 바람에 꽃비 날리며 떠나더라도 또 꽃 무덤 생긴다! 그녀의 뼈를 꽃밭에 뿌리면 꽃잎 피어요.
그녀의 뼈를 천상별밭에 뿌려요. 고운 빛이 닿아 별을 빛나고 별밭의 묘지기인 나는 별마중하리니, 모든 별들이 환한 계절 어느 영혼인들 돌아오지 않으랴. 바람에 별이 스치면 떠나더라도 또 별 무덤 생긴다! 그녀의 뼈를 별밭에 뿌리면 빛이 터져요.
그녀가 죽은 것은 오늘 같은 봄날이었는데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여
장지로 향하는 텅 빈 영구차 속에서
달항아리를 감싸 안은 그녀 어린 딸 은파를 위해
내가 그때 볼펜을 꺼내어
조의금 봉투에 쓰다 보니
횡설수설 산문시가 되어버렸다
문상객도 시인 몇 명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나는 그녀에게 시밖에 바칠 게 없다
그녀 망우리 공동묘지는
시인 공동묘지여서
시인은 죽음도 낭비하지 마라,
절망도 낭비하지 않는 시라서 그러느냐
우리 상여 소리 뒷소리
무의미한 후렴구가
내가 살아생전 그리 바라던
'우주문학'이란 이상한 시의 첫 구절이다,
일생 나는 후렴구를 쓴 것이다
내가 나를 장례 치르는 상엿소리가
나를 상여에 태우고
시가 나를 망우리에 데려왔는지 모른다
모든 시는 죽음의 환희인지 모른다
죽지 않고서는 쓰지 못한 시를
나는 쓰고야 말았다
이렇게 내가 죽어 있지 않느냐
아, 그러니 시인의 묘지는
죽어서야 산상꽃밭이 생긴다
이렇게 내가 살아 있지 않느냐
아, 그러니 시인의 시는
죽어서야 천상별밭이 생긴다
공동묘지는 밤이 더 아름다워
달이라도 뜨면,
달나라 미인 항아가 내려오겠구나
나도 월궁에 숨어 살며
시를 탐하여 두꺼비 같은 몰골이 되어버렸구나
시를 기다리지 못한 성급함이 살아서 시를 보지 못하고
죽어서 시를 맞이하는구나,
『은하태양』이라는 이 시집을
성급히 누설하지 말고
시여, 무덤처럼 침묵해다오
나는 시의 항아를 탐하다, 그녀처럼
월궁에서 벌을 받고 있다
살아서 죽어서 언제나
시마에서 벗어날까,
시마왕은 알까, 모른다!
누가 알랴, 시의 공동묘지 밤을
시의 공동묘지가 월궁이고
시의 월궁이 공동묘지라는 것을
그러니 나의 월궁이여,
생각이 꽃피어 떨어지지 않고
열매 맺을 때까지 침묵해다오
그러니 나의 시여,
생각이 꽃피어 떨어지지 않고
열매 맺을 때까지 무덤아 침묵해다오
무덤의 질투는 삶 속에 있고
시의 질투는 죽음 속에 있다,
시의 질투는 인간보다 무서운 것을
나는 후회하노라, 월궁을 탐한 죄를
시의 월궁은 그 달빛이
소박한 어둠 속에 있는데
죽어서야 그걸 깨닫는 어리석은 시인이여
시무덤
시마왕에게
무덤에 대고 말하고
무덤이 대신 들어주니
오죽하면, 무덤이 말하고 무덤에게 듣게 하나!
내 시는 한 번도 공동묘지를 벗어난 적이 없구나,
공동묘지가 나를 쓰고
월궁에 데려다가 형벌을 준다
아무리 찬란한 시도
천상별밭을 오르지 못했고
산상꽃밭을 가꾸느라
여태 분주한데, 지상과
천상은 이어지지 않았으니
달의 사다리는
수천 기의 무덤에서 나온 영혼들이 관객이 되고
망우리, 망우! 망우! 공동묘지가 무대가 되어
시극을 공연하여
빛을 뿜어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동묘지 무덤의
최후의 악기들이 첫 움악을 초연하는데
그녀의 천상별밭에서
달항아리를 안고 온
은파는 항아의 어린 딸인 것이다
멀리서 둘레둘레 공동묘지를 찾아다녔더니
정말 공동묘지가 되어버렸구나
산상꽃밭 천상별밭의 월궁이 그녀 무덤이다
-전문(p. 36-44)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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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3월(411)호 <신작특집> 에서
* 김영산/ 1990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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