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멍 소회/ 손수진

검지 정숙자 2024. 8. 4. 01:32

 

    불멍 소회

 

     손수진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는데 머리 하얀 망구望九가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살면서 숱하게 눈물 나는 일 많고, 기막힌 일 한두 번이었겠는가 그때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네.

  활활 타는 불꽃을 보면서 그 세월을 다 견디고 살았네.

  이상하게도 불꽃을 보고 있으면 팥죽 솥같이 폭폭 끓던 가슴도 가라앉데야.

 

  이른 봄에는 왜 이리 비 오는 날이 많을까요.

  이른 봄에는 왜 이리 바람 부는 날이 많을까요.

 

  어머니는 집안의 눅눅한 공기가 번지면 아궁이 앞에 앉아 말없이 물을 끓였습니다.

  젖은 솔가지를 아궁이에 몰아 넣고 후후 바람을 불어 불꽃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어머니의 입김은 젖은 솔가지에 불을 붙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안개 같은 연기만 뭉게뭉게 피어올라 눈앞에 있던 것들을 하나둘 삼켜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오빠도 심지어는 어머니마저도

  

  입춘 지나고, 안개 자욱한 날

  툭, 툭 마른 가지 꺾어 아궁이에 던져 넣으며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불꽃은 한 번이라도 이렇게 활활 타올랐던 적 있었는지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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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3월(411)호 <신작특집> 에서

  * 손수진/ 2005년 『시와사람』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