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경인_시인하다(발췌)/ 서정 : 김경인

검지 정숙자 2024. 7. 31. 02:23

 

    서정

 

    김경인

 

 

  바닷마을에 갔었네

  사랑하려고

 

  겨울 한껏 낮아진 

  겸손한 지붕들을 돌아 나오다

 

  보았네

 

  멀리서

  푸른 하늘 아래

  순한 슬픔처럼 나부끼는

  희디흰 빨래들을

 

  나는 천천히 다가갔지

  수백 오징어들이 줄줄이 꿰어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네

 

  오장육부가 능숙하게 도려내진 채

  전시되는 투명한 내부

 

  저 멀리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참혹뿐인

    -전문-

 

  시인하다(발췌)_김경인/ 시인

  요즘의 내게 시는 이런 것이다. "저 멀리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참혹뿐"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비극이 우세한 세계에서, "도려내진 채 전시되는 투명한 내부"를 옮기는 일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듯이 침묵하다가, 문득 바라보고 증언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는 시를 택해왔다. 나를 관찰하듯이, 내가 속한 세계와 이웃들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몇 년 전, 함부로 버려지는 약물이 얼마나 생태계를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버려진 항우울제가 바다도 흘러 들어가, 그 약에 취한 나머지 자신의 천적 앞에서 한껏 집게발을 쳐들고 용감하게 맞서는 '오리건 게'를 다룬 기사였다. 생활 앞에서는 도망가기 일쑤이지만, 시는 잠시나마 나를 '오리건 게'로 만들곤 한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날들이 계속될 것임을 안다. 미학적인 태도는 거리에서 나온다고 나는 일관되게 믿어왔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라고 페소아는 썼다. 영혼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찰의 힘은 남아 있을 거라고, 나는 마침내 시인한다. 선생들이여, 내게는 시의 재능은 없다. 다만, 관찰의 재능은 있을 거라고 믿는다. (p. 시 268-169/ 론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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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1월(409)호 <시간성_ 나의 시를 말한다_13> 에서 

  * 김경인/ 시인, 2001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한밤의 퀼트』『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