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죽음을 기다리는 집▼/ 김명리

검지 정숙자 2024. 7. 31. 14:41

 

    죽음을 기다리는 집▼

 

     김명리

 

 

  우산을 받아도 온몸이 젖는 세찬 빗줄기를 뚫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도착했다

 

  강둑 따라 늘어선 화장터에는 죽은 몸을 씻기고 꽃으로 장식하는 장례의식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강한 빗줄기들은 때로는 밧줄처럼 삼세三世의 인연을 동여매고 때로는 유리대공처럼 깨어져 허공에 흩어지기도 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자들이 속속 도착하는 집, 화장터 입구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숨을 거두기 무섭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그 육신을 태워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믿음이 그 집을 세웠으리라

 

  잠시 빗줄기의 눈금이 촘촘해졌던가 생과 멸이 화염에 휩싸이고 빗줄기마다 화엄세상이 진동한다

 

  바그마티 강물 위 꽃잎처럼 떠 있는 몇 마리 소들은 인간의 주검과 그 타고 남은 재가 떠내려 오든 말든 미동조차 없다

    -전문(p. 22)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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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2월(410)호 <신작특집> 에서

  * 김명리/ 1983년『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