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와 낙엽
김건영
신자유주의의 모기가 방안을 떠돌고 있다 겨울에도 모기가 있다 자유란 얼마나 가려운 것인지 집이 부풀고 있다 굴러다니는 것들이 바깥에 있다 밟으면 부서지거나 터지는 것들 안에서 바깥으로, 다시 바깥으로부터 안으로의 검열이 있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은행잎을 줍는 것을 보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여닫는 사이 길에서 은행잎을 줍는 것을 보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여닫는 사이 들이지 않은 것들이 들어온다 저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검역 속에서 막아야 하는 것들 속에서 내가, 내가 자주 집으로 돌아온다 쌀에도 벌레가 있다 이 집은 안전하니 한 마리쯤 더 키웠으면 좋겠군 그 은행잎들은 어디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모든 집에는 책責이 있다 그것을 갉아먹고 사는 존재도 있는 법이지 받아야 할 것과 내주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내가 들어온 만큼 집에서 나가는 것의 이름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바깥에서 본 것들을 잘 털고 들어와야지 주의를 듣고 신발을 벗는다 밀폐된 곳이 자유롭다니 작은 것들이 더 작은 집으로 들어오고 아무리 털어도 먼지 없는 날이 없다 창을 닫고 단속하는데 모기들은 자유롭다
-전문-
▶파롤의 빈손이 떨려올 때(발췌)_황유지/ 시인
이 시에 등장하는 시어들의 인상은 '사후적'이다. 시간을 경유하는 운명을 지지지 않는 언어란 없겠지만, 여기 놓인 시어들은 나는 네가 지난 세기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듯, 과거의 무엇을 데려온다. '페스트와 망명 정부의 지폐'로 바꾸어 쓴들 이상하지 않을 이 제목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성은 문득 의심스러워진다. '후기' 자본주의의 끝판'왕, '포스트' 코로나와 같은 단어들이 우리의 '지금'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우리의 '지금'이 '-post', 어떤 것의 '후'라면 이 시간은 과거나 미래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재는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 닿는 곳은, 김건영이 조각내고 그럼으로써 가로질러버린 시간의 오랜 정의다.
그런가 하면 이 시에서 공간은 폐소의 공포를 부추긴다. 그건 자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신자유주의의 각종 채무의 누적과 더불어 음험하게 깔린 반복적 감염병에 대한 예감으로 고립을 추동하는 숨 막히는 밀폐감이다. 자유로운 것은 '모기'뿐이다. 신자유주의의 모기-은행(잎)-책(빚)의 연결은 '모기지(론)'을 연상케 하며 화자를 더욱 좁은 방으로 밀어붙인다. 저 아이가 물려받을 은행이 떨구는 빚, 좁아지는 집,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지만 저 집들의 아래, 우리의 발아래를 갉아대는 들쥐의 위협만이 신자유주의의 모기와 함께 시공을 가로질러 넘실댄다.
특히 팽창되는 빚과 감염의 메커니즘 내부에서 점점 더 좁혀지는 자리의 모양새는 그가 전작들에서 사용했던 '回'라는 한자를 소환한다. '지금'의 세계가 무언가 빠져나간 뒤 남은 죽음과도 같이 텅 빈 입 속의 검은 잎, 점점 축소되는 공간이라면 마치 알파벳 E에서 검은 선이 그어진 것을 글씨의 양각이라 할 때 나머지 부분일, 쓰여지지 않은 음각을 읽어내었던 것처럼-'回'의 빈 공간, 언젠가는 존재했을지도 모를 저 하얀 면에 들어차 있었던 것, 어쩌면 잃어버린 생기과 충만일지도 모를 그것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p. 시 152/ 론 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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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1월(409)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작품론>에서
* 김건영/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 황유지/ 시인,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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