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종이시계/ 이서란

검지 정숙자 2024. 4. 19. 02:00

 

    종이시계

 

     이서란

 

 

  꽃이 핀 자리에 시간이 맺혔다

 

  어떤 시간은 히말라야산 핑크 소금 빛 같은 노을로 피기도 한다

  피는 것들은 쉽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켜보는 눈동자가 촉촉하기 때문이리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피는

  시간은 시계에 의존하는 명사名詞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끊임없이 초침의 페달을 밟고 밟아야 닿는 기억

 

  가을이 오면

  흰꽃나도샤프란은 선회하는 날개로 온다

  젊은 날의 격동과 혼돈

  삶의 애환과 살아 숨 쉬는 욕망이

  싱싱한 꽃잎으로 유영하는

  시간을 정복해야 한다

 

  시간의 집 앞에서 날갯짓으로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눌러지지 않는

  돌아가는 길을 어디에다 두고 온 것인지

 

  시간이 핀 자리에는

  색이 바랜 꽃잎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문(p. 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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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신작시>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이서란/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별숲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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