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시계
이서란
꽃이 핀 자리에 시간이 맺혔다
어떤 시간은 히말라야산 핑크 소금 빛 같은 노을로 피기도 한다
피는 것들은 쉽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켜보는 눈동자가 촉촉하기 때문이리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피는
시간은 시계에 의존하는 명사名詞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끊임없이 초침의 페달을 밟고 밟아야 닿는 기억
가을이 오면
흰꽃나도샤프란은 선회하는 날개로 온다
젊은 날의 격동과 혼돈
삶의 애환과 살아 숨 쉬는 욕망이
싱싱한 꽃잎으로 유영하는
시간을 정복해야 한다
시간의 집 앞에서 날갯짓으로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눌러지지 않는
돌아가는 길을 어디에다 두고 온 것인지
시간이 핀 자리에는
색이 바랜 꽃잎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문(p. 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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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신작시>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이서란/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별숲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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