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도굴꾼/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4. 6. 5. 23:01

<디카시 : 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도굴꾼

A grave thief

 

     정채원

 

 

  나는 당신을 도굴해서

  내 무덤에 넣어야겠다

     -전문(p. 48-49)

 

  I'm going to steal you.

  I'll put you in my grave.

     -번역: 필자

 

 

  해설> 한 문장: 인용된 시는 석축과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지하의 내부에서 멀리 밝은 바깥을 향해 찍은 사진을 담았다. 시의 문면文面으로 볼 때 어쩌면 왕릉과 같은 무덤의 석실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여기서 '나'와 '당신'이라는 선명한 두 실체를 전제하고, 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사진의 구도로 유추하지면 '나'는 '당신'의 공간을 침범하는 자리에 있고, 그 무례한 처사는 도굴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항차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을 도굴해서 '나'의 무덤에 넣겠다고 한다. 아직 그 무덤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시의 정조情調로 보면 사생결단의 각오가 실린 어휘다. 짧은 시행詩行을 통해 진중한 의미의 덫을 매설한 경우다. (p. 145) <김종회/ 문학평론가 ·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
* 디카시집 『열대야』에서/ 2024. 5. 30. <작가> 펴냄 
* 정채원/
1996년 월간『문학사상』으로 등단, 작품집『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