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함명춘
회사 근처라 자주 갔다
눈에 한 바구니 꽃을 캐어 오려고
귀에 한가득 새소리 담아 오려고
돌았던 길을 매번 걸으니 연꽃처럼 새겨진
나만의 둘레길이 사철 피고 지곤 했다
둘레길엔 관음보살 무릎 같은 돌이 있어서
쉬었다 가는 날이 많았다 그곳에서
승진은 필요 없고 오래 회사만 다니게 해달라고
불자도 아닌데 기도를 드렸다
사는 게 왜 내 마음 같지 않느냐며
대웅전까지 찾아 들어가 따져 물은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청초한 한 그루 홍매화보다
절 밖 고층 아파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내 맘속 소의 고삐를 붙들어 매 달라고 빌었다
언제나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는
부처의 크고 넓은 귀를 닮은 자비가
대로까지 날 마중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마음에 먹구름이 끼는 날에도 갔고
마음에 해가 뜨는 날에도 갔다
나를 옭아매는 그 뭐든 벗어 던지고 싶을 때도 갔다
극락이 별거더냐 바로 여기다 싶었다
-전문-
*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천년 고찰
해설> 한 문장: 만약에 승진이 된다면 영예퇴직의 확률도 따라서 높아진다. 또 승진에 따른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을 떠안음과 동시에 실적 여하에 따른 책임도 커진다. 이러한 딜레마에 빠진 시인 화자는 그래서 그저 "오래 회사만 다니게 해 달라"고 불전에 기원을 한다. 그러면서 그의 고개는 관성처럼 "절 밖 고층 아파트"로 저절로 돌아간다. 이런 가장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초상이 아닌가.
시인의 고통(염원)이 이토록 평범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이상과 세계의 일치를 꿈꾸었던 저 먼 낭만주의 시대, 그리고 민족과 민중 해방에 경도되었던 이념의 시대에 볼 수 있었던 고귀한 고통에 비해 직장과 아파트에 목을 매단 시인의 고통은 그만큼 세속화되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걸까. 고통이 세속화된 만큼 높고 정갈한 뜻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시인들의 고통은 일상과 주변에 더 밀착하게 되었다.
시인의 고통이 아무리 세속화되었다지만, 이들은 개인의 고통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고통을 찾아내거나 함께 앓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약간은 유별난 환자이다. 또 이들은 그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픈 환자이면서 아픔을 치료하는 주술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 주술사는 약초를 찾거나 환부의 고름을 짜는 일을 환부의 고름을 짜는 일을 본분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언어로 만든 명약을 자신과 이웃에게 처방한다. (p. 시 52-53/ 론 115-116) (장정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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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종』에서/ 2024. 3. 20. <걷는사람> 펴냄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 부문 당선,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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