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장 외 1편
함명춘
아무리 팔월의 햇살이 길다 해도
이곳에 닿으면 칠부바지처럼 짧아지고 만다
남보다 하루를 먼저 살아가는 사람들
라면에 고춧가루를 훌훌 풀어 먹고는
햇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 한가운데에
부리나케 간이 천막을 치고
수레 가득한 생업들을 내려놓는다
결곡할 만큼 하얀 그들의 생애를 드러내며
하염없이 내려지는 배추단들,
그 배춧속의 싱싱한 허파를 꺼내 놓기도 하면서
그들의 하루는 시작된다
몇 번인가 뛰어내리려고 발버둥을 쳤던가
자식의 학년처럼 무섭게 올라가는 가난의 언덕에서
그들의 소원이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새가 되어 날아올라 보는 거
세상의 중력이 닿지 않는 저 구름 위에
한 채 둥지를 짓고 살아 보는 거
오늘도 가슴속에 소원 하나씩 품고 사는
서부시장 사람들은 좌판 위에 서서
싸아요 싸요 고올라 골라 날갯짓하듯 박수를 치며
하늘을 향해 쿵쿵 발을 구른다
-전문(p. 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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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鐘 이야기
그의 몸은 종루였고
마음은 종루에 걸린 종이었다
종에선 날마다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 아무리 귀 기울여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종소리였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까지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남을 위해 땀방울과 눈물을 흘렸던
그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주일에 한 번씩 그가 행했던 일을 따랐다
날이 갈수록 종소리는
점점 더 크게, 더 멀리 울려 퍼져 나갔다
하나 아무리 귀 기울여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의 종소리라고 불렀다
-전문(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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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종』에서/ 2024. 3. 20. <걷는사람> 펴냄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 부문 당선,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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