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정숙자
1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렇게 검을 수 있나 악취가 날 수가 있나
믿을만한 구멍 이다지 귀할 수 있나
2
버러지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리도 꿈틀꿈틀할 수가 있나
떨어지고 눌리고 까닭 없이 먹힐 수 있나
거꾸로 매달려야만 날개를 틔울 수 있나
3
농가에 태어난 나는 햇살을 봤고
군인가족으로 떠돌며 권력을 봤고
시인이 되어 불명예를 봤다
4
정녕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곳이
돌보지 않는 꽃이 그리 솟을 수 있나
풀벌레 울음소리가 뭇 별 속에 섞일 수 있나
5
쓰레기가 아니라면 이곳에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곳에
그 누가 함부로 ‘삶’ 따위를 내던졌으랴
6
우리의 육신은-목숨은 분명 신(神)들의 종량제 봉투인 게다
7
(개중엔 나비가 되는 벌레도 있지
하지만 날개를 달았다고 모두가 나비는 아냐
나방이거나 독나방이 더 활개 치는 여기는 오호!)
8
우리가 정녕 쓰레기봉투가 아니라면
무참히 간단히 터질 수 있나
짓무른 심장을 안고 하염없이 뒹굴 수 있나
9
용량별 구역별 쓰레기봉투 깊숙이
찌른 독극물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푸른 하늘이 꺼억꺽 녹을 수 있나
-『시안』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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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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