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역린/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9. 1. 01:09

 

 

       역린

 

       정숙자

                                                                                                         

   1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렇게 검을 수 있나 악취가 날 수가 있나

   믿을만한 구멍 이다지 귀할 수 있나

 

    2

   버러지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리도 꿈틀꿈틀할 수가 있나

   떨어지고 눌리고 까닭 없이 먹힐 수 있나

   거꾸로 매달려야만 날개를 틔울 수 있나

 

    3

   농가에 태어난 나는 햇살을 봤고

   군인가족으로 떠돌며 권력을 봤고

   시인이 되어 불명예를 봤다

 

    4

   정녕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곳이

   돌보지 않는 꽃이 그리 솟을 수 있나

   풀벌레 울음소리가 뭇 별 속에 섞일 수 있나

 

    5

   쓰레기가 아니라면 이곳에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곳에

   그 누가 함부로 ‘삶’ 따위를 내던졌으랴

 

    6

   우리의 육신은-목숨은 분명 신(神)들의 종량제 봉투인 게다

 

    7

   (개중엔 나비가 되는 벌레도 있지

   하지만 날개를 달았다고 모두가 나비는 아냐

   나방이거나 독나방이 더 활개 치는 여기는 오호!)

 

    8

   우리가 정녕 쓰레기봉투가 아니라면

   무참히 간단히 터질 수 있나

   짓무른 심장을 안고 하염없이 뒹굴 수 있나

 

    9

   용량별 구역별 쓰레기봉투 깊숙이

   찌른 독극물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푸른 하늘이 꺼억꺽 녹을 수 있나 

      -『시안』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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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