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
나희덕
늑대들이 왔다
피 냄새를 맡고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얼음을 핥을수록 진동하는 피비린내
눈 위에 흩어지는 핏방울들
늑대의 혀는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자신의 피인 줄도 모르고
감각을 잃은 혀는 더 맹목적으로 칼날을 핥는다
치명적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
먹는 것은 먹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저녁이 왔고
피에 굶주린 늑대들은 제 피를 바쳐 허기를 채웠다
늑대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전문-
*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법으로, 날카로운 칼에 동물 피를 발라 얼려서 세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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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시』 2019-가을호 <인터뷰 / 자선 대표시> 에서
* 나희덕 / 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파일명 서정시』등, 산문집『저 불빛들을 기억해』『한 접시의 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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