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늑대들/ 나희덕

검지 정숙자 2019. 9. 17. 01:53

 

 

    늑대들

 

    나희덕

 

 

  늑대들이 왔다

 

  피 냄새를 맡고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얼음을 핥을수록 진동하는 피비린내

  눈 위에 흩어지는 핏방울들

 

  늑대의 혀는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자신의 피인 줄도 모르고

  감각을 잃은 혀는 더 맹목적으로 칼날을 핥는다

  치명적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

 

  먹는 것은 먹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저녁이 왔고

  피에 굶주린 늑대들은 제 피를 바쳐 허기를 채웠다

 

  늑대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전문-

 

    *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법으로, 날카로운 칼에 동물 피를 발라 얼려서 세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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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시』 2019-가을호 <인터뷰 / 자선 대표시> 에서

   * 나희덕 / 1989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파일명 서정시』등, 산문집『저 불빛들을 기억해』『한 접시의 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