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잠자는 벽/ 이우성

검지 정숙자 2019. 9. 17. 02:08

 

    잠자는 벽

 

    이우성

 

 

  시멘트를 사다가 벽돌을 만들어 팔았지

  아빠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형과 나를 깨워 한 시간 넘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너흰 대학까지 보낼 거다

  매번 같은 소리 좀 그만하고 가서 자요

  엄마는 말하고

  당신이 그러면 내 권위가 뭐가 돼 아빠는 크게 말하고

  권위

  아빠가 동경하던 단어

  아빠는 아침마다 형과 나를 깨워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어제 스무 개를 했으면 오늘 스물한 개를 할 수 있다 하루에 하나씩 늘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벽돌처럼 단단해질 거다

  엉덩이를 더 내려 요령 피우지 마 구둣주걱으로 내 등을 내려치면서

  그런데 어느 날 아빠는 술을 마시고 와서 형과 나를 깨워 앉히고 울었다 아빠가 너희를 제대로 키운 게 맞지

  엄마는 그만 자라고 하고

  대학생인 형은 네 맞아요 아빠 맞아요 하품을 하며 말하고

  나는 우리 반에서 팔씨름은 내가 제일 세요 라고 말했다

  아빠는 웃었다 무너지듯 쓰러져 잠들었다

  깨진 벽돌처럼 사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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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시』 2019-가을호 <신작시> 에서

  * 이우성/ 2009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