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이누/ 이장욱

검지 정숙자 2019. 9. 17. 02:17

 

    아이누

 

    이장욱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 내가 이미 죽었다고 한다. 볕 좋은 곳에 묻혔는데도 뭐가 그리워서

 

  무덤을 나와 홀로 산책을 하고 전화를 하고 스쿠터를 타고 질주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 내가 아이누인이었다고 한다. 나는 북해도의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잠시 이 도시에 들렀을 뿐이라고

  주식은 바다 연어

  전생은 코뿔소

  하지만 지금은 서울시민으로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 내가 노숙자가 되고 신앙을 설파하고 모르는 아이들을 마구 낳고 하하하 웃으며 놀이공원을 뛰어 다니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맞아요. 사실 나는 아이누 사람인에 스쿠터를 탈 줄 안다. 나는 바다 위를 달릴 수도  있고 코뿔소처럼 포효할 수도 있다.

 

  나는 북해도의 해변에서 아내와 소박한 삶을 살아갔을 뿐인데

  나는 어째서 이곳에서 장례식도 다 끝나고

  볕 좋은 오후에

  잘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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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시』 2019-가을호 <신작시> 에서

  * 이장욱/ 1994년『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내 잠 속의 모래산』『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