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게 던져 줘
고광식
내가 죽으면 사자에게 던져 줘 나는 사자 뱃속으로 들어갈 거야 종족의 우상 같은 건 필요 없어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송곳니에 찢기고 어금니에 저작 당하던 생명처럼 그렇게 내 장례를 사자의 입속에서 치르고 싶어 네가 나무 한 그루를 선택해 그 뿌리에 몸 대는 수목장을 권해도 나는 허기진 사자의 밥이 될 거야 구름 위에서 빙빙 돌던 독수리 떼 날아와 내 장례식에 머리를 조아리게 해야지 나는 결심한 거야 장례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 줘 너와 함께 뒷골목 식당에서 개고기 수육을 먹던 것처럼, 무지의 냅킨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오르톨랑을 먹던 것처럼, 내 희망을 들어 줘 장례식을 사자 무리로 채우게 해 줘 정말 동물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면 해 욕심껏 살찌운 몸뚱이, 사자들이 거칠게 뜯어먹다가 남으면 문상 온 독수리들이 허기를 달래겠지 내 장례식 날 함박눈 장엄하게 내렸으면 좋겠어 허공을 붉게 물들이는 선혈을 보고 싶어 나는 죽어서 아주 천천히 세상을 향해 으르렁거릴 거야
-전문-
▶ 사건을 호출하는 감각/ 고광식의 시(발췌)_ 김효숙(문학평론가)
'사자'는 死者일 수도, 獅子일 수도 있다. '사자'의 의미가 갈라지는 이 기호는 "던져 줘"라는 요구 언어 속으로 통합된다. 어느 날 이 세계에 이유 없이 던져진 것처럼 불시에 죽음의 세계로 던져지는 데에도 별다른 뜻이 없다. 삶과 죽음은 현재적이면서 수평적 사건이다. 삶에 이유가 있다면 이전에 기투된 자로서 이후 다시 기투될 때까지 직선의 시간을 곧장 밟아가는 것. 고광식은 여기서 왕성한 맹수의 식욕에다 몸을 던져 넣는다. 허기진 생명욕구로 상위 포식자의 위치를 점유해 온 화자가 동물의 먹이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이 미래 기투 욕망은 생명체의 종결 법칙을 격화하려는 의도이기보다, 시간의 육식성을 말하려는 비유법으로 보인다. 이미 죽은 자가 그 죽음을 재확인하는 행위는, '과거'란 현재가 먹어치워 사멸한 것이고, 미래란 현재를 기투할 수 있는 가능성일 것이나 '~거릴 거야'라고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그 미래를 간접적으로 살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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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2019-가을호 <시인해부/근작시/평론>에서
* 고광식/ 1990년 『민족과문학』으로 시 부문 & 2014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 김효숙/ 2017년《서울신문》으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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