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색청(色聽)*/ 고광식

검지 정숙자 2019. 9. 15. 22:56

 

 

    색청色聽*

 

    고광식

 

 

  네가 나에게 피지 않는 장미를 던질 때

  도시는 폭설에 포박당하여 비틀거린다

 

  노랫소리가 눈보라를 흩뿌린다

  이어폰을 낀 내 발밑에 색의 계단이 놓이고

  눈 감으면 너의 무릎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발을 헛디딘다

  달리는 자동차는 비눗방울처럼 파동친다

 

  나는 색을 잡기 위해 손을 내민다

  부서져 날리는 눈은 나에게만 쏟아져

  너는 눈꽃 모양의 연기로 저편에 있다

 

  낮은 목소리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기다림에 젖은 버스정류장이 폭설에 묻힌다

 

  소리에서 태어난 색이 커가는 것을 보며

  나는 목관악기의 나팔관으로 숨어든다

 

  음들이 허공에 눈송이로 떠서

  고음의 밝음과 저음의 어둠을 섞는다

  폭설이 도시를 덮는다

 

  거리엔 붉은색 유리 파편이 쌓이고

  너에게로 가는 길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전문-

 

   * 음에 의해서 본래의 청각 외에 특정한 색채 감각이 일어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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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2019-가을호 <기획특집Ⅱ/시인해부/신작시>에서

  * 고광식/ 1990년 『민족과문학』으로 시 부문 & 2014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