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돼지 외 1편
니르완 다완토(인도네시아)
어쩌면 내 머리카락이 비단결일지 모르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다. 거울 속의 내가 신성한 빛을 발할까 두려웠고
또한 신도들과 겨루고 싶지 않았다.
날이 밝기 전 깨어, 분홍색 돼지코에 흰 분칠을 한 광대 얼굴로
위장한 채 나는 당신의 나머지 잠 속으로 들어가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당신의 적들 가운데
문득 당신이 잠에서 깼을 때, 검게 탄 내 늑골이 당신의 허기를
길들이고 당신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기를 바라며 당신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주변에서 나를 기다렸다.
더 많은 이들이 당신을 흠모하도록 당신은 멋진 다리를 늘 자랑했다.
내 다리가 당신 다리보다 더 근사하지만 두 다리를 진창에 처박아
두는 걸 나는 가장 좋아했지.
내 부족의 역사를 따져본 후 우리들이 멋부릴 줄 아는 존재들이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도시로 갔을 때, 당신의 부족은 자비를 베풀어 한가득 옷을 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벌레와 덩이줄기를 먹어 치우는 것에
족했다.
당신이 내 목구멍을 찔렀을 때, 움푹 팬 상처에서 무한한
너비의 거대한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 내게 어울리리라
당신이 생각한, 태양 아래 부풀어 올라 고동친 것
내가 완벽하게 넘어졌을 때, 당신은 이미 너그러운 내 얼굴을 잊었다.
축 늘어진 내 얼굴은 당신 곁의 살인자 무리들을 숨겨줄 수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나는 당신은 도살자가 아니라고, 우상숭배자들이
나를 그들의 협력자로 두려 애쓰는 건 쓸모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내 영혼은 높디높은 하늘로 날아가는 대신 깊디깊은 땅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신은 남몰래 입구를 열었다.
여행의 끝에서 내 귀는 마치 최후의 장미 같았다. 타버린 검은 장미
어쩌면 영원히 기갈 들린 허기진 장미, 당신이 꺾고 싶어하는 걸
알지. 하지만 그러지 마.
인간의 기도를 훼방놓을 것이 뻔한 칠흑 같은 꽃들에 혹하는 건 그들에게 좋을 게 없지 더욱이 환하지만 덧없는 당신의 꿈속에서 당신을 마음에 품기 전부터 내 무덤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내 기도를 듣지 못한다. 아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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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무릎 위로 쓰러졌지
긴 흰색 가운을 입었지
그녀가 나를 마음껏 더럽히도록, 어쩌면 검게 물들일지도
묻혀온 피 얼룩은 아직 그대로지
가자에서 누군가 나를 쏘았다고 그녀가 말했지
왜 이리 서둘러 왔는지 그녀가 물었지
나는 답하지 않았지 이미 나는 태양을 망각했지
빛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정말이야
이미 내 이름이 이 석회암 조각 위에 새겨져 있었어
그녀는 대지, 그렇지? 네가 내 위에서 그녀의 얼굴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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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ASIA』 2018-가을호 <ASIA의 시 ASIA's Poetry>에서
* 니르완 디완토/ 동자바에서 자라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고 있다. 작가의 시는 "독자를 극단의 병렬과 숨은 논리 사이 그리고 아이와 같은 장난기와 계산된 무심함 사이의 상태로 이끈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남 자카르타 문화센터 '코뮤니타스 살리하라'의 창립 회원이자 수석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그의 시집 가운데『여왕벌의 심장』『발 다섯 달린 주전자』두 권 모두 적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작품으로는『행복의 기원과 기타 시들』(영어 및 독일어 번역 시들),『하나 반 첩보원』(시각 예술에 대한 수필),『순수한 열망의 박물관』(영어로 번역된 시들)이 있다. 그의 최근 저작들『빨간 책』과『오렌지책』은 "여유있게 시와 산문을 오가는" 작품들이다.
* 김래이/ 시 전문 번역가. 이장욱 시인의『정오의 희망곡』을 영역, Godhill Press에서 출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기금을 통해 최승자 시인의『이 시대의 사랑』과 김행숙 시인의『이별의 능력』을 번역했다. 코리아 타임즈 주관 45회 현대한국문학번역상 시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 블로그주 : 영역본은 책에서 일독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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