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유정이_우연과 우연의 점화, 어떤...(발췌)/ 내 아버지의 시 : 모헌 카키

검지 정숙자 2018. 12. 21. 01:08

 

 

    내 아버지의 시

 

     모헌 카키(Mohan Karki, 네팔)

 

 

  별 무리 속에서 

  어딘가로 숨어버린 한 개의 별처럼

  시인들의 무리 속에서

  어딘가로 숨어버린 내 아버지는

  하늘에다가 시를 쓰신다고 한다

  글자도 모르는 문맹인 내 아버지는

  달빛으로 시를 쓰신다고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이나

  한낮과 깊은 밤에도

  내 눈은 항상 하늘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시를 연주하라고 천둥이 울리나 보다

 

  아버지의 시를 보여주려고 햇살이 비치나 보다

  아버지의 시를 즐기려고 별들이 반짝이나 보다

  아버지의 시를 애잔히 여겨 먹구름이 끼나 보다

  자손들이 어디를 향하든 당신의 시를 보여주려고

  내 아버지는 하늘에다가 시를 쓰시나 보다

  자손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버지는 달빛으로 시를 쓰시나 보다

 

  별 무리 속에서

  어딘가로 숨어버린 한 개의 별처럼

  시인들의 무리 속에서

  어딘가로 숨어버린 내 아버지는

  하늘에다가 시를 쓰신다고 한다

    -전문- 

 

 

  우연과 우연의 점화, 어떤 필연의 발생에 대하여_ 유정이

  그는 네팔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특정한 직업이 없던 때에 우연히 <아리랑> TV를 보다가 한국에 대한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곧바로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고 근로비자를 얻어 한국에 와서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한국의 문화, 역사 등을 공부하고 네팔의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로 전송하는 일을 했으니 주경야독의 대표적인 네팔인이었던 셈이다. 현재 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후 네팔과 한국 양국 문학의 교량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모헌은 이제 한국어로 시를 쓴다. 물론 탄생 과정에서 그는 네팔어로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놓는다고 한다. 그가 한국어를 수월히 할 수 있다고 해도 그의 모국어는 네팔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 감식력이 매우 뛰어나다. 발음이 부정확해서 대화를 할 때는 의미를 놓칠 수도 있지만 텍스트 번역을 할 때는 그렇지 않다. 특별히 난해와 함축의 장르인 시를 대상으로 할 때도 그는 가장 적절한 자국어를 끌어내는데 탁월하다. 나아가 리듬을 중요시하는 네팔의 독자를 위해 재구성의 묘미를 살리기도 한다,

  모헌은 실수 대장이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생각해도 계속 웃음이 나는 그런 즐거움을 주는 실수 등이다. 그러한 그를 나는 '실수 공장 공장장'이라 직함을 주기도 했는데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가 문학인일 수밖에 없는,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한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모험가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산악인들이 찾는 나라라는 인식에 가려 문화적으로는 시선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네팔이라는 공용어 외에 무시할 수 없는 각기 소수민족어가 있고 이들 언어군을 중심으로 한 문학들이 꾸준히 실험되고 있다. 어떤 힘이 한국의 시인 하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모든 오래된 일의 시작과 경과 그리고 결과들은 '우연과 우연의 점화가 만들어 낸 인연 혹은 필연'이라는 의미의 자장에 무리 없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

  *『시와사람』2018-겨울호 <세계의 시 · 6> 에서

 유정이/ 199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