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1889~1988, 89세)/ 번역 : 심지영
굴은 약간 큰 조약돌만 한 크기로, 겉이 다소 거칠고 희끄무레하게 고르지 않은 색을 하고 있다. 그것은 고집스럽게 닫혀 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헝겊에 싸서 잘 들지 않는 이 빠진 칼로 여러 번 타격을 가해야 한다. 호기심 어린 손가락이 베이고, 손톱이 부서지기도 하는 거친 작업이다. 그것에 가해지는 타격들은 후광 같은 하얀 둥근 막에 흔적을 남긴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마실 것과 먹을 것 모두. 자개 빛 창공 (정확하게 말해서) 아래에 위 천장이 아래로 내려앉아 가장자리에 거무스레한 레이스 술장식이 달린 초록빛 도는 끈적끈적한 주머니 하나가 후각과 시각을 따라 밀려왔다 쓸려갔다 한다.
희귀하지만 가끔 진주 같은 문구가 그 자개 목구멍에 맺히게 되면, 우린 곧 장식할만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
*『문파 MUNPA』2018-겨울호 <해외문학>에서
*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1889~1988, 89세)/ 프랑스 남부 지방의 몽펠리에 출생, 자신의 생각보다는 사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관찰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사물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자신의 작품을 시라 부르고, 자신이 시인으로 호칭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알려진다. 대표 시집으로는 『사물의 편』(1942) 『표현의 광란』(1952) 『비누』(1967) 등이 있다.
* 심지영/ 20세기 시와 그림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파리 7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현재 국립방송통신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표 저서로는 『문학과 미술의 만남』(공저) 등이 있다
'외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열(酷熱)/ 야에 요이치로(八重洋一郞) : 한성례 옮김 (0) | 2019.01.20 |
---|---|
유정이_우연과 우연의 점화, 어떤...(발췌)/ 내 아버지의 시 : 모헌 카키 (0) | 2018.12.21 |
노래/ 필립 들라보 : 심지영 옮김 (0) | 2018.12.13 |
수면의 파문/ 게리 스나이더 : 강옥구 옮김 (0) | 2018.11.09 |
신원철_영미시 속의 불교(발췌)/ 파도에 관하여 : 게리 스나이더 (0) | 2018.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