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왕자에게 1
이혜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
밤새워 내린 가을비 속속들이 울음 우는 들녘
푸르게 푸르게 젖어드는 이
내 그대 가슴에 들게 하여 나를 적시는 이
나보다 더 내 속을 잘 아시는 이
불을 내면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른다
-전문-
서정을 말하다> 부분: 시는, 일상의 굴레에 매여, 또는 그날이 그날 같은 매너리즘에 빠져 기계적으로 걸어가는 우리 삶을 일깨우고 쓰다듬어 꿈을 꾸게 하고, 묻혀 버린 삶의 핵심에 가닿게 만들어 준다.
시는, 그리움을 더 그립게 하고, 사랑을 더 사랑하게 하고, 슬픔과 아픔의 껍질을 깨어 더 슬프고 더 아프게 하여 치유에 다가가게 한다. 잠든 영혼을 깨워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과 혜안慧眼을 가지게 한다. 시는 또한 겨레의 아픔을 함께 앓으며 겨레의 미래를 예인하는 예지를 지닌다.
시는, 모든 유정물과 무정물, 생명 지녔거나 생명이 없거나 두두물물頭頭物物 속의 수많은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그들과 함께 웃고 그들 울음을 대신 우는 곡비가 되게 한다.
시 안에서 우리는 장자가 되기도 하고 나비가 되기도 하고 장자인지 나비인지 모두 잊어버리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 들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이상주의자의 꿈꾸기이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독자들도 꿈을 꾸며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삶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가게 되고 함께 날아오르는 날개를 키우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다. (p. 시 132/ 시론 145-146)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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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집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에서/ 2024. 9. 15. <문예바다> 펴냄
* 이혜선/ 1950년 경남 함안 출생, 1981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새소리 택배』『흘린 술이 반이다』등 6권, 저서『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 산책』『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아버지의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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