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우루
이난희
폭염 속에
소나기 쏟아집니다
요즈음 일어나는 잦은 현상입니다
비를 피해 성정각 누마루 아래 들었습니다
빗소리에 고요는 더 지경을 넓힙니다
왕세자의 공부방은 열려 있습니다
한 나라를 짊어질 사람의 마음을 짐작 못 하듯
훗날 어떻게 기록될지 그도 짐작 못 했겠지요
돌계단을 딛고 빗물이 내려가는데
그냥 찾아온 생각들
요즘엔 기쁜 소식이 정말 뜸하지 뭡니까
비가 내려서 반갑고
비가 그쳐서 반가운 마음이 교차합니다
시시콜콜
소소한
뭐 그런 반가웠던 소식들을 불러 모아
누각 동쪽으로 향합니다
喜雨樓
가뭄 끝에 내린 비의 기쁨을
함께하고파 이름 지은
왕의 마음이
춤을 추듯 편액에 새겨 있습니다
희우루
희우루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지는 말
손을 뻗어 허공에 편액의 글자를 따라 써 봅니다
끝나지 않을 여름의 슬픔이 쉬려나 봅니다
-전문(p. 58-59)
* 창덕궁 성정각은 왕세자의 공부방이다. '희우루'는 동쪽 누각에 동쪽을 향해 현판으로 편액의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다. 1777년, 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증건하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 누각이 완성되었을 때 다시 반가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정조는 누각의 이름을 '희우루'라 부르고자 한다며 그깨의 마음을 『홍제전서』 54권 「희우루(志)」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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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가을(34)호 <poem> 에서
* 이난희/ 시인. 2010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얘얘라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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