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희우루/ 이난희

검지 정숙자 2024. 11. 12. 01:50

 

    희우루

 

    이난희

 

 

  폭염 속에

  소나기 쏟아집니다

  요즈음 일어나는 잦은 현상입니다

 

  비를 피해 성정각 누마루 아래 들었습니다

  빗소리에 고요는 더 지경을 넓힙니다

 

  왕세자의 공부방은 열려 있습니다

  한 나라를 짊어질 사람의 마음을 짐작 못 하듯

  훗날 어떻게 기록될지 그도 짐작 못 했겠지요

 

  돌계단을 딛고 빗물이 내려가는데

  그냥 찾아온 생각들

 

  요즘엔 기쁜 소식이 정말 뜸하지 뭡니까

 

  비가 내려서 반갑고

  비가 그쳐서 반가운 마음이 교차합니다

 

  시시콜콜

  소소한

 

  뭐 그런 반가웠던 소식들을 불러 모아

  누각 동쪽으로 향합니다

 

  喜雨樓

 

  가뭄 끝에 내린 비의 기쁨을

  함께하고파 이름 지은

  왕의 마음이

  춤을 추듯 편액에 새겨 있습니다

 

  희우루   

  희우루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지는 말

  손을 뻗어 허공에 편액의 글자를 따라 써 봅니다

 

  끝나지 않을 여름의 슬픔이 쉬려나 봅니다

     -전문(p. 58-59)

 

   * 창덕궁 성정각은 왕세자의 공부방이다. '희우루'는 동쪽 누각에 동쪽을 향해 현판으로 편액의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다. 1777년, 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증건하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 누각이 완성되었을 때 다시 반가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정조는 누각의 이름을 '희우루'라 부르고자 한다며 그깨의 마음을 『홍제전서』 54권 「희우루(志)」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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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가을(34)호 <poem> 에서

  * 이난희/ 시인. 2010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얘얘라는 인형』